‘육첩방은 남의 나라’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에 나오는 시구 일부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담담하게 가슴을 울리는데 여러 시구 중에서도 나는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저 말이 잊을만하면 한 번씩 생각난다. 저녁을 편의점 불고기맛 주먹밥으로 때우던 중 갑자기 또 시구가 생각났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그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이 작은 방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다다미는 눈에 안 보이지만...
‘육 평 방은 남의 집’
육 평은 아니고, 팔 평 정도 되는 이 보금자리에 둥지를 튼 지 약 4개월이 지났다.나이 서른. 앞자리가 바뀌면서 무엇을 했느냐, 나이만 먹었느뇨 물어본다면 그래도 올해는 하나 제대로 대답할 거리가 있다.
“독립을 했습니다.”
할머니와 함께 돌아다니며 전세대출이 되는 곳을 몇 주 동안 알아봤고, 봇짐러를 자처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봇짐이 너무나도 컸던 나는 일조권을 포기하는 대신 같은 보증금의 조금 넓은 평수를 택했다. 사실 이 모든 것을 제하더라도 “대출 가능한 집”으로 필터를 먹이면 남아있는 데이터가 얼마 없었고 가지고 있는 돈으로 또 한 번 필터를 먹이면 지금 사는 이 집. 단 하나의 데이터만 남아 있었다.
올해 7월 만기로 집 계약이 끝나갈 무렵, 집주인은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했다. 그전부터 이사 갈까 말까 식구끼리 벌이던 논쟁은 보증금 인상에서 일단락이 되고, 우리 가족은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이사 준비라는 2년마다 오는 퀘스트를 다시 수행하게 되었다. (100프로 타의가 아닌 이유는 내 방이 침수된 적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 그래도 집 계약이 만료되면 이사 갈까 말까로 식구들끼리 말이 왕왕 오가곤 했다. 나에게 글쓰기 공포증과 좌절감을 준 ‘내 방 침수기’는 이후 시간이 되면 다루도록 하겠다. 침수에서 눈치챘겠지만 맞다. 이 집도 반지하였다.)
주어진 퀘스트명은 2년 전과 똑같지만, 가지고 있는 아이템-보증금-은 2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고 달라진 거라면 집안에 사는 사람들의 나이가 2살 더 먹었다는 것 그리고 2년 동안 인근에서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노력해도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비슷한, 아니면 이보다 더 작은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로 하지 않아도 느끼고 있었다.
다 같이 드라마 보다가 가볍게 꺼낸, 집 알아보고 있냐는 물음에 ‘구하면 어련히 말 안 해줄까.’로 응수하면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 (구하면 어련히 말 안 해줄까, 반응이 예민해 보일 수도 있지만 2년 전의 어느 주말, 할머니와 함께 집을 알아보러 다닌 적이 있다. 저녁 무렵, 길에서 엎드려 울고 싶었지만 할머니도 있는데 젊은 내가 울 수 없다는 각오로 버틴 적이 있는데, ‘보증금 낮은 집을 찾아서’도 시간이 되면 다루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런 환경 속에서 그동안 무슨 정신으로 책을 수집했던 걸까?라는 질문이 움텄고, 읽지도 않고 쌓여 있는, 온라인 서점 높은 등급에 기여해준 책들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읽어서 일주일에 두 권씩, 이라는 또 지키지 못할 계획을 세웠다가 지웠다를 반복했다.
답 없는 어떡하지의 굴레에 빠질 무렵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 J가 집 계약이 만료되어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월세로 살던 J언니는 그동안 월세로 나간 비용이 아까워서 고민을 하던 찰나 중소기업 청년 대출이라는 걸 알게 되어 이번 기회에 전세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J언니의 이야기를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듣는 아이처럼 경청했고, 인터넷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를 글로 다시 확인하고, 대출에 성공한 대출 선배들의 성공담을 보면서 꿈을 키워나갔다. 은행에서 너같이 직장 경력이 애매한 사람에게는 대출을 줄 수 없다고 거절당하는 상상(이랄까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면서 마음 준비도 했다. 회사가 내 기분을 상하게 할 때도 ‘이 거지 같은 직장이 그래도 대출 조건은 되니까’라며 위안을 삼았다. 우리 집에서 나라는 머릿수를 줄이면 되겠다는 계획을 구체화해서, 지금 사는 집보다 작은 집으로 이사 가도 괜찮게끔 만들 셈이었다.
그 무렵 동시에 우리 집은 정말 운 좋게도, 당시 살고 있던 집과 비슷한 조건으로 약 20걸음 떨어진 집을 계약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 집은 살고 있던 집과 크기는 비슷했으나 2층이었다.
지상으로 올라왔다는 벅찬 마음이 들었고 드디어! 드디어! 라는 마음이 솟구쳤다. 그러나 한편으로는뭔가 갑작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나도 친구에게 선물을 주려고 나름 열심히 만들고 있었는데, 친구가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을 받게 되어 내 선물은 필요없어졌을 때의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 확신이 들면 나름 멋들어지게 계획을 말하려고 했는데 독립할 필요가 없어졌다. 또다시 생각이 시작되었다. 칼을 뽑았는데 다시 칼집에 넣기에는 애매한 상황. 며칠을 고민하다 운을 뗐다.
독립해보고 싶다.
내가 집에서 나가면, 아직 한 번도 제 방을 갖지 못한 동생 Y가 이번 기회에 제 방을 가질 수 있다.
이미 진척된 계획을 완수해보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정말 독립이란 걸 해보고 싶어서인지, 정말 정말 동생 Y를 위해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우리 가족은 평소에도 내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는 편(네가 다른 사람 말 들을 애니?)으로 아쉬워하는 언니를 제외하곤 모두 수긍해주었다. 그리하여 가지고 있는 책의 일부를 매주 정리, 책을 샀던 온라인 서점에 다시 중고로 팔아 이사 비용을 마련했다. 이사 비용이 마련하면서 동시에 주말마다 짐을 포장하기를 몇 주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집이라 부르기엔 어색하고 쑥스러운 이 곳에 내 짐을 풀어놓았다.
할머니 방 티비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언니가 친구랑 수다 떠는 소리, Y가 유튜브 보면서 신나게 웃는 소리도 모두 사라진 곳. 그렇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여실히 드러나는 곳. 보통 내가 사는 곳을 집이라 부르고 가족들이 사는 곳을 본가라 부르던데 무슨 심보에서인지 나는 가족들이 사는 곳을 집이라 부르고 내가 사는 곳은 지명(예를 들면 TT동 집)을 붙여서 부른다. 그래서 초반에 내가 어디 있는지 물어볼 때 헷갈려했다. 이런 식으로
언니: 지금 집이야?
나 : 아니.
언니 : 어디야? 지금 너무 늦었다. 혼자 사니까 일찍 다녀.
나: 웅. 근데 지금 TT동집.
지금은 내 기준 의미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맞춰주고 있다. 아무튼. 선풍기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적막감만 감도는 이곳에서의 2년의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고 하루씩 줄어들고 있다.
2년 뒤엔 어떻게 되어 있을지, 이 모든 짐을 들고 돌아온 탕아처럼 집으로 들어갈지 아니면 열심히 개미가 부스러기 모으듯 돈을 모아 조금 더 나은 집으로 이사 갈지(가능할까) 아니면 또 8평 방에 조금 더 남아 있을지... 또다시 생각에 빠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