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점을 넘어서

끓는점을 넘기 전까지 그 누가 물이 끓을 것을 생각이나 했겠는가. 회사를 다니는 누구나가 지금이 금요일 5시 50분이길 바라는 것처럼 회사 생활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고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참고 티 안 내던 사람. 안 그러던 인간이 찡찡대기 시작하면 더 마음이 가기 마련이다. 일하다가 뜬금없이 카톡이 울린다.


[진짜 미치겠다. 이러다가 정말 죽을 것 같아.]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나도 머릿속에 경광등이 울리기 시작한다. 부정적인 회로가 극도로 발달한 내게 언니의 메시지는 하나의 인풋 신호가 된다. ‘실수했나.’, ‘클레임이 들어왔나’, ‘누군가가 괴롭혔나.’ 등등 말이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한 우리 언니는 대부분의 문과 출신들이 그러하듯 전공과 상관없는 어플 서비스와 관련된 일을 하는데 어플 내 콘텐츠를 게시하거나 고객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 지급 업무를 하다 보면 수십 번 확인하게 되고 실수할까 봐 엄청 예민해지고 걱정된다고 푸념했던 적이 종종 있어서 자금 집행도 일부 하는 것 같다. 다행히 저 메시지는 낙숫물 떨어지듯 쌓인 스트레스가 별안간에 폭발하는 현상이었다. 정말 큰일이 터졌을 땐 이런 메시지가 온다.


[나 어캄ㅋ 일 터짐.]


그럼 난 나도 모르게 사건의 전후관계 파악과 해결을 위한 관심보단, 실수의 크기와 실수의 원인과 책임이 언니한테 있는지 물어보는 속물이 되곤 한다. 그러고 나선 근본적인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언니가 겪었던 일화를 들으며 언니의 감정이 잠잠해지길 바란다.


그러던 중 이번 주 초부터 언니가 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평소 위장이 약해서 고기 먹고 속이 더부룩한 경험이 많은 난 고기 노래를 부르는 언니가, 어차피 돈은 또 내가 내겠지 싶은 마음도 은연중에 있어서, 귀찮았다. 그럼에도 찡찡 리듬과 함께 고기 노래를 부르는 언니가 내심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불금을 맞이하여 TT동 집에서 자고 싶다는 언니에게 저녁은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고 먼저 권했다. (TT동 집은 지난여름 음식물쓰레기와 초파리 전쟁으로 한차례 곤욕을 치른 적이 있어서 TT동 집에서는 음식을 잘 안 해 먹는다.)


목요일인 어제 회식으로 고기를 먹었는데-금요일 오전에 울렁거려서 힘들었다. 정말.- 소고기가 참 맛있어서 이 집 고기를 언니에게 먹이고 싶었다. 목살이 먹고 싶다는 언니의 의사를 존중해 목살과 나름 대접하는 의미로 안창살을 시켰다. 가격을 본 언니가 놀라서 괜찮냐고 물어봤다. 지갑 사정을 크게 여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먹을 것도 없었다. 그동안 아침과 점심을 안 먹은 값을 이렇게 쓴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서 더 깊게 생각하면 머릿속의 계산기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할 것이기에 생각하지 말고 그냥 먹자고 했다. 공깃밥에 냉면까지 알차게 먹고 가볍게 계산하고 나왔다.


내 주제에, 한 끼니에 이런 금액 계산해보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언니가 좋은 걸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회사 생활에 치여 흔들리는 언니한테 내 선에서 해줄 수 있는 건 그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 하나였다. 그러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음식을 사주는 선배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선배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감사했다. 내가 언니가 힘들 때 언니 옆에 있을 수 있다는 점과 언니에게 맛있는 걸 사줄 수 있는 환경이 된 것에.

어쩌면 한 끼, 고기 한 점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 세끼 중에 하나이고 일주일을 꼬박 다 챙겨 먹는다면 21끼 중에 한 끼, 한 달을 꼬박 내리 챙겨 먹는다면 90끼 중에서 한 끼. 수가 많아질수록 피스가 작아지는 퍼즐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런 조각들, 함께 이야기했던 찰나들이 모여서 낙숫물은 뚫을 수 없는, 큰 파도가 와도 견딜 수 있는 절벽 바위가 된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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