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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Jun 27. 2020

02. 사장 지인 사칭 사기

인더XX 편의점에서 오전 알바로 2개월이 지났을 무렵 야근 근무 알바생이 그만두고 자리가 났다. 시급이 더 많았기에 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사장님께 물어보니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처음 밤샘은 힘들었지만 3주 정도 지나고 나니 밤낮이 바뀌는 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 일들이 있고 나서 밤에 일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뼈저리게 느꼈다.


야간 알바는 밤 11시에 출근해서 오전 8시에 퇴근한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을까, 새벽 1시가 지나 어떤 아저씨가 가게로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머리를 단정하게 정리했으며 전반적으로 인상이 좋아 보였다.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말할 때마다 입냄새가 장난 아니게 심했다는 점이었다. 비유하자면 된장국을 2주 정도 계속 먹고 양치를 안 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거기에다 약간의 하수구 냄새를 덧붙이면 될 것 같다. 처음 모습과 달리 입냄새로 난 뒤통수를 한 대 크게 맞아 타격을 입은 기분이었다. 


좁은 계산대에서 냄새를 더 맡고 싶지 않아 뒤쪽에 진열돼 있는 담배 선반에 몸을 껌딱지처럼 붙였다. 아저씨는 편의점에 들어오자마자 사장님의 지인으로 왔다며 사장님께 돈을 빌리려고 하는데, 사장님께서 편의점에서 가지고 가라 하셔서 왔다고 했다. 지금 생각을 가지고 그때 그 당시로 되돌아 간다면 나 자신에게 이 말을 하고 싶다.

 ‘미쳤니! 병X이니!!! 왜 그런 거야!!!! 정신 차려!!!!!’


그렇다. 난 병X같이 그 아저씨한테 10만 원을 건넸다. 끝까지 의심했어야 하는데 사장님의 인상착의를 말하고, 어느 정도의 친분을 과시하니 그 말빨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미심쩍어하는 내 모습을 보자 그 아저씨는 시계를 담보로 건넸다. 담보를 받고 나서야 계산대에서 10만 원을 꺼내 건넸다. 돈을 받은 아저씨는 유유히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기분이 영 찜찜해 난 3시간 뒤에 사장님께 전화했다. 


뻔했다. 사장님은 모르는 사람이라며, 내가 사기당한 거라 말해주셨다. 전화기 너머 사장님이 뭐라 말씀하셨지만 말소리 자체는 들렸지만 머리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난 머리가 백지가 되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전화기를 내 오른쪽 귀에 대고서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내가 다시 정신이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어떤 남자 손님이 큰소리로 나를 불렀을 때였다.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남자 손님이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고 계속 끊어진 전화기를 오른쪽에 들고 멍하니 있었던 것이다. 손님의 담배 계산이 끝나고 난 멍하니 서있다가 순간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계산대 안쪽의 작은 의자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그 상황을 생각하자 딱 한 마디가 떠올랐다.

사기꾼이다!


사기꾼이란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울분이 치솟았다. 얼굴에 열이 오르면서 눈가엔 약간의 눈물이 고였다. 흘릴 정도의 눈물은 아니었지만 그때를 다시 생각하면 나 자신이 꼴사나워 보이기도 하다. 뻔한 레퍼토리에 넘어가 홀라당 10만 원을 넘기다. 그 아저씨에 대한 원망과 분노는 물론이고, 거기에 넘어간 나 자신에게 더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났다. 날이 밝아 오전 알바 언니와 교대하고 집으로 향했다. 온 힘이 빠지면서 샤워 후엔 밥 먹고 멍 때리면서 앉아 있었다. 


밤에 일하려면 낮에 자야 했지만 그 상황이 못이 박힌 것처럼 생각이 나서 잠들 수 없었다. 결국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밤 11시가 되기 전에 출근했다. 오후에 근무하시는 사장님께 그때 상황을 다시 이야기하고 CCTV로 확인해봤다. 나에겐 CCTV가 마지막 희망이었다. 너무나 괘씸한 이 아저씨를 꼭 잡고 싶었다. 알바생들이 힘들게 일하면서 번 돈을 사기 쳐서 손쉽게 가져가는 못된 사람! 이 사람을 꼭 잡고 싶다고 간절히 생각했다. 생각대로 잡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장님은 CCTV에 얼굴이 흐리게 찍혀 경찰에 신고해도 못 잡는다고 했다. 절망이었다. 다시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뒤죽박죽 꼬이면서 복잡해졌다. 화를 삭이지 못했지만 이걸론 경찰에 신고해도 못 잡는다는 사장님의 말에 체념했다.


난 가게에 출근하기 전 미리 준비한 10만 원을 사장님께 드렸다. 사장님께선 내가 안쓰럽게 보였는지 반만 달라고 말씀하셨다. 난 가게에 너무나 큰 피해를 줬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거절했지만 사장님께선 야간 일은 처음이고, 이번 일은 사고니까 반반하시자고 다독이면서 날 위로해 주셨다. 결국 5만 원만 받으시고 이 일은 마무리됐다.


난 아직도 그 아저씨의 생김새가 기억난다. 키 167 정도에 40대 중반쯤에 은색 더블 슈트를 입고 있었다. 진한 밤갈색의 구두와 2대 8 가르마에 검고 단정한 머리, 얼굴엔 약간 주름이 있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이다. 난 아직도 그때의 내가 한심했다. 그리고 8년이 지났지만 그 아저씨가 용서가 안 된다.


그 일이 있고 한 달이 지나서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슬렀을 때 생각지도 못한 손님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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