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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Jul 04. 2020

03. 술 취한 미아

2011년 7월. 야간 근무로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새벽 1시가 지났을 때였다. 밖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가게는 한적했다. 여유가 생기면 난 의자에 앉아 작은 언니에게 빌린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딸랑거리는 방울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읽고 있던 책에 책갈피를 꽂아 한쪽으로 치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맞이 인사를 하면서 손님을 보자마자 ‘아~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남자 손님의 모습 때문이었다.  남자 손님은 문 손잡이를 놓지 않고 두 손으로 꼭 잡고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잠깐 그렇게 기대서 있다가 계산대로 비틀비틀거리며 다가왔다. 

 

다가오는 그 손님은 고개를 숙인 채 서있다가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더니 힘껏 내리쳤다. 크게 부딪치는 소리가 가게에 울렸다.  가까이 온 손님의 몸에선 강한 술냄새가 났다. 그 손님은 계산대 앞에 지탱하며 한참을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 저 좀 도와주세요...”

 “네? 무슨 일 있으세요?”

 “크... 큰일이 났어요.”     


남자는 약간의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난 이 손님이 취해서 술주정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론 사고가 나서 도움을 청하려고 편의점까지 찾아온 게 아닌가 싶었다. 


 “뭘 도와드릴까요? 혹시 무슨 사고가 났어요?”

 “경찰 좀 불러주세요! 경찰이요!!!”

 “무슨 일인지 말씀해주셔야 제가 신고를 하죠!! 혹시 무슨 교통사고나 경찰을 부를 정도로 큰 사고가 났나요?”

  “미... 미아가 됐어요...”

 “예?”

 “제가 미아가 됐어요! 경찰 좀 불러서 저 좀 도와주세요!!!”


순간 사고가 정지했다. 남자 취객을 약간이나마 걱정한 마음이 허무해졌다. 그 취객은 계속 이 길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미아가 됐다며 경찰을 불러달라고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핸드폰으로 가족에게 전화해서 찾아와 달라 하시거나 아니면 택시로 타고 가시면 괜찮지 않을까요?”

 “몰라요. 전 아무것도 없어요. 여기서 미아가 됐어요. 빨리 경찰 아저씨 좀 불러줘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더 이상 말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난생처음으로 112에 신고했다. 전화해서 상황을 그대로 전하니 곧 가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 취객에게 경찰이 올 거라는 말을 전하자 음료수 냉장고 앞에 대자로 드러누워 잠들었다.


20분 정도 지났을까 경찰차가 길가에 멈추고 경찰 두 명이 편의점이 내려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들에게 다시 상황 설명을 하자 그들은 취객을 일으켜서 편의점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매장 밖으로 나가니 안도감이 들었지만 눈길은 계속 갔다. 밖에선 셋이서 계속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난 지켜보며 취객을 차에 태워서 데려갈 거라고 예상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대화가 끝났는지 경찰은 그대로 그 취객을 길에 놔두고 가버렸다. 취객을 길에 놓고 유유히 차로 떠나가는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경찰차가 사라지자 그 취객은 비틀거리며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와 이번엔 출입구 앞에 누워 코를 골며 잠들었다. 난 경찰이 경찰서로 데려가서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으로 안심하고 있었다.  아까의 상황을 다시 생각하며 태평하게 자고 있는 취객을 보니 짜증이 올라왔다.


난 다시 경찰에 전화했다.     


취객이 다시 들어와서 편의점 바닥에 잠들었다고 말을 전하자 곧 다시 경찰을 보낸다고 말을 듣고 전화를 끓었다. 난 취객이 일어나 위협을 가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놓인 빗자루를 한 손에 쥐고 밖과 취객을 번갈아가며 주시했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처음 왔던 경찰관 두 명이 취객의 양옆에 붙여 그를 일으킨 다음 경찰차에 태워 데려갔다. 사라지는 경찰차를 보며 다행이라 생각에 이번엔 진짜 마음이 놓였다.     


나중에 든 생각은 그 취객이 가게에서 난동을 부렸다면 경찰관분들은 취객을 한 번에 데리고 가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 남겨진 취객이 가게에 들어와 내게 폭력을 행사했다면? 뉴스에서나 나오는 사건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단 생각에 이르자 소름이 돋으며 오싹했다. 


위험한 상황까지 가지 않았지만 그 상황을 방치하고 가버린 경찰관들.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경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예전의 일로 모든 경찰분들을 나쁘게 말한 것 같지만 그 당시의 난 너무 절박했다. 혹시나 이를 읽고 기분이 상한 분이 있다면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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