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유이 Aug 02. 2020

07. 강렬한 새 출발

I편의점의 후폭풍은 셌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데 할머니와 언니들의 도움이 컸다. 가족들의 위로와 격려 덕분에 우울한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난 언니가 둘이나 있다. 사촌지간이지만 갓난아기일 때부터 같이 살아 막역한 사이다. 내가 겪은 안 좋은 경험을 이야기하면, 나 대신 욕하거나 화낸다. 난 언니들이 욕하고 화내는 걸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낀다. 내가 느낀 게 틀리지 않았고 그 사람들이 잘못했다는 걸 확인받는 거다.


정말 크거나, 번화가에 있는 매장이 아닌 이상 대부분 편의점 매장 관리는 한 사람이 한다. 실수했을 때 손님이 화내는 건 어쩔 수 없다. 실수한 건 잘못한 거니까.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는 것도 당연하다. 사장님에게 혼나는 것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하지만 실수한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니다. 가끔 어떤 손님들은 실수한 나를 나쁜 사람으로 여긴다. 이들의 감정은 확고하다. 그럼 난 내게 자신이 없어진다. 지난 5개월이 떠오를 때마다 언니들에게 하소연했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 아니라며 나를 다독여준다. 그렇게 다시 일할 힘을 조금씩 채웠다.


힘을 비축한 난 다시 알바를 찾았다. 언니들은 이번엔 여유를 갖고 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조언을 염두에 두면서 오전 평일 3일만 일하는 곳을 찾았다.


어디 있는 곳인지 밝히진 않겠다. 만약 언급해서 이곳을 알아채고 내게 찾아오신다면, 난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해서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질 게 틀림없으니까. 또 당황할 게 눈에 선하다. 무엇보다 이 글을 읽고 오셨다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부끄러우면서도 난감할 것 같다.


당시 주변엔 C편의점이 많이 생겼다. 다른 알바도 많았지만 난 다시 편의점을 선택했다. 다시 한번, 이번엔 제대로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11년 10월 가을 하늘이 참 맑은 날이었다. 난 그날 C편의점 면접을 보기 위해 잘 안 하던 화장을 하고 몇 번 입지도 않아 새것이나 다름없는 정장을 꺼내 입었다. 면접을 본다는 생각에 너무 떨렸다. 초행길이라 많이 헤맸지만, 일찍 나온 덕분에 30분이나 미리 도착했다.


점장님께 면접을 봤다. 긴장해서 많이 떨면서 대답했다. 다행히 점장님께선 내가 괜찮으셨는지 바로 채용해주셨다. 

 “내일부터 출근하는 거로 합시다.”

결과는 빨리 듣는 게 좋지만 눈앞에서 합격 통보를 받으니 기분이 뛸 듯이 좋았다. 집에 가는 길, 과자를 두 봉지 샀다.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다시 오전 알바다!’

이때 만난 점장님과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어 함께 일하고 있으니,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첫 출근날 나는 간단하게 물건 위치와 포스기 사용법을 익혔다. 이후 사흘간 다른 알바생이나 점장님께서 내가 하는 걸 봐주셨다. 차츰 일이 익숙해지자 혼자서 매장을 보게 되었다. 한 달이 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삼각김밥과 도시락을 진열하기 위해 개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어떤 남자아이가 카운터에 다가와 서 있었다. 나는 황급하게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골드 담배 두 개 주세요.”

정말 당당했다. 딱 봐도, 누가 봐도 미성년자였다. 많이 봐야 14살이었다. 그런데도 예의상 물어봤다.

 “신분증 있으세요?”

 “잠깐만요.”

남자아이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뒤적거렸다.

 “아, 깜빡하고 집에 놓고 왔나 봐요. 없네요.”

 “신분증 검사 없이는 못 드립니다.”

남자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저 성인 맞아요! 신분증 진짜 있는데 집에 놓고 왔어요! 얼굴 보면 몰라요?”

흡사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말했다.


진짜 성인이라면 신분증 요구에 아무렇지 않게 반응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동안으로 보이냐며 좋아하며 신분증을 건넨다. 반면 이 남자아이와 같은 미성년자는 신분증을 요구하면 온몸과 마음으로 거부반응을 보인다. 찔리기 때문이다. 

 “네. 얼굴만 보고는 모르겠네요. 신분증 없이는 못 드립니다.”     

담배를 사려는 뻔한 거짓말이지만 이 정도는 과거에도 여러 번 겪었던 일이었다. 최대한 태연하고 예의 있는 말씨로 아이를 상대했다.

 “아나! 이 ××년아!! 나 미성년자 아니라고 말하잖아. ×같은 년아!”

남자아이는 나를 향해 갖은 욕을 뱉고는 그대로 매장을 나가버렸다. 


청소년들이 욕을 많이 쓰는 건 안다. 학교 다닐 시절엔 내 친구들도 욕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내가 욕의 대상은 아니지만, 욕을 듣는 것엔 익숙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선 욕을 들은 적이 별로 없었고 내게 직접 욕하는 사람도 없었다. 욕 면역력이 완전히 떨어졌나 보다. 그리고 보통 욕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겐 쓰지 않는 거로 여기고 있었다.


난 이때 내 알바 기간을 통틀어서 나보다 어린아이에게, 모르는 사람에게 처음으로 욕을 들었다. 충격을 받고 멘탈에 금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업무 시간이라 겨우 다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에 집중했다. 내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퇴근하고 나서도 계속 그 일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본인이 정말 미성년자가 아니고 담배를 사지 못한 게 억울하다면 이후에 신분증을 가지고 다시 올 수도 있다. 그럼 정말 난 사과할 의향도 있었다. 손님은 쉽게 왔다 가지만 편의점은 폐업하지 않는 이상 자리를 지키고, 알바생도 관두지 않는 이상 일하는 시간대에 항상 있으니까. 하지만 그 남자아이는 이후에 우리 가게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담배를 미성년자에게 팔면 편의점은 벌금을 물고 일정 기간 담배를 팔 수 없다. 담배 자체는 이윤이 많이 남지 않은 물건이지만 담배 때문에 편의점에 손님이 자주 오게 되면 다른 물건도 많이 사게 되어 매장에 이점이 많다고 들었다. 사실 알바생인 내게 담배가 매장에 주는 이점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


다만 내 실수로 인해 점장님이나 매장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신분증은 꼼꼼히 확인한다. 최근엔 얼굴로 나이를 알아보기 더 힘들어서 더욱 경각심을 갖고 임하고 있다


오래 일하면서 주변 편의점에서 미성년자에게 실수로 담배를 팔아 담배판매 정지에 걸린 이야기도 듣는다. 주변에 피해 매장이 생기면 더 바짝 긴장해서 신분증을 확인한다. 그 결과 7년이 넘도록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판 적은 없다.


내 기억 속 C편의점의 첫 진상은 미성년자 욕쟁이로 시작되었다. 이후 편의점 일을 계속하면서 담배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욕먹은 건 약과에 불과하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06. 더 이상 야간은 못 해! (후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