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때문에 욕을 먹고 난 후 별다른 사건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한동안은 잠잠했던 것 같다. 편의점은 상품을 판매하는 일이 주된 일이지만 각종 서비스도 제공한다. 그중 하나가 택배 서비스다. 모든 매장에서 제공하는 건 아니다.
편의점은 단순히 택배 보낼 물품을 보관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보낼 물품은 손님이 상자에 포장해서 전자저울 기능이 있는 기계에 직접 접수해야 한다. 접수가 완료되면 반으로 가를 수 있는 스티커 형식의 송장이 나온다. 선불일 경우 카운터에 비용을 지불해야 최종적으로 접수된다.
계산 후 송장을 반으로 갈라, 하나는 상자에 붙이고 다른 하나는 손님이 보관하면 된다. 편의점에선 따로 상자를 팔지 않고 가위나 테이프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손님은 모두 포장해서 가져와야 한다. 이렇게 접수된 택배는 매일 한 번 택배 아저씨가 수거해가신다. 이때, 모두 가져가는 게 아니라 배달이 가능한 물건만 수거해가신다. 가능 여부는 접수할 때 기계 화면에 자세히 안내된다.
점포에서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면 손님은 매장에 있는 알바생에게 문의한다. 하지만 알바생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아무것도 없다. 왜 여기는 마트보다 아이스크림이 비싸냐, 잔돈이 조금 부족한데 깎아주면 안 되냐, 왜 내 택배는 수거해가지 않냐고 따져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손님의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은 할 수 있다. 하지만 하소연이 아니라 클레임 수준으로 단계가 올라가면 그때부터 정말 난감해진다.
조끼에 명찰을 하고 있지만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등에서 삐질 땀이 난다. 내 이름을 알아서 어떻게 할 생각인지, 부정적인 상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다음 단계는 점장님을 찾거나 점장님과 통화하고 싶다고 말한다. 점장님은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주시는 편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어느 날, 택배 때문에 일이 터졌다. 오전 시간대의 피크는 앞서도 말했듯이 출근 시간대와 점심시간이다. 손님들이 밀물처럼 몰려왔다가 썰물처럼 한 번에 빠져나간다. 한 사람이 가고 나서 다음 사람이 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말이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한 번에 내린 사람들이 그대로 편의점에 오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손님이 많으면 여러모로 신경이 곤두선다. 계산하지 않고 그냥 나가는 손님이 있는지 주시할 수 없다. 게다가 줄이 길게 생기게 되면 빨리 계산해야 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진다.
편의점도 콜센터나 식당과 마찬가지로 대기시간이 길어질수록 손님의 감정이 상하기 쉽다. 게다가 쫓기면서 일을 할 때야말로 계산 실수가 나기 쉬우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요즘은 대부분 카드나 앱카드를 많이 사용해서 거스름돈 실수가 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날 역시 한차례 손님들이 왔다가 한 숨돌렸을 때였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캐리어를 끌고 편의점에 들어오셨다. 참고로 내가 일한 C편의점은 가게 출입구가 두 군데 있었다. 앞문은 자동문이었고 뒷문은 여닫이문이다. 아주머니께선 계산대로 오셨다.
“편의점 택배를 접수하러 왔는데 기계가 어디 있어요?”
나는 택배 접수 기계 위치를 안내해드렸다. 내가 일한 매장의 택배 접수기는 카운터 위에 있었다. 포스기의 왼쪽에 택배 접수 기계가 있었었다. 바로 옆엔 앞문, 유리로 된 자동문이다.
아주머니께서 택배 기계 앞으로 가서 캐리어를 바닥에 눕히고 부스럭거렸다. 아주머니의 모습을 보자 택배로 접수가 안 되는 물품이 떠올랐다. 낚싯대, 야구 배트, 항아리, 캐리어는 접수하더라도 택배 아저씨가 가지고 가지 않는다. 괜한 마음에 아주머니께 말을 걸었다.
“손님 혹시 캐리어를 택배로 보내시는 건 아니시죠? 죄송하지만 캐리어는 택배 접수가 안 돼서요.”
“네가 뭔데 나한테 지적질이야!”
아줌마는 소리치고 눈을 흘겼다. 지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노파심에 알려드리고 싶은 거였는데.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 싶을 정도였다.
아주머니는 캐리어에서 꺼낸 물건을 꺼내 택배를 접수하다가 내게 울컥 화를 냈다.
“너 때문에 보내야 하는 주소 잊었잖아! 왜 갑자기 말을 걸어서 지랄이야!”
아주머니의 새된 목소리에 놀라 어쩔 줄 몰랐다. 내가 입도 뻥긋 못하는 모습을 보고 아주머니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다.
“나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서 전화 못 하고 너 때문에 잊어버렸으니까 전화기 내놔!”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알려드린 것뿐이었다. 하지만 점점 감정적으로 변하는 아주머니의 말투와 일그러진 표정을 보니 처음에 말을 건 내 잘못이라는 자책감이 들었다. 아무리 나 때문에 주소를 잊어버렸다고 해도 화를 내면서 욕을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싶었다. 당시엔 말이 나오지 않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여, 여기요.”
아주머니가 시킨 대로 가게 전화기를 꺼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건 아주머니는 통화하면서 주소를 입력하고 택배 접수를 마쳤다. 여기에서 사건이 끝났다면 괜찮았다. 기억에 남지도 않았을 거고 기록하지도 않았을 거다.
“여보세요? 아니, 글쎄 있잖아.”
아주머니는 택배 접수를 마치고 나서도 전화기를 돌려주지 않았다. 장장 20분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손님 물건을 계산하면서 힐끔 쳐다봤다.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개의치 않아 하며 수다 삼매경이었다.
“택배 접수를 마치셨으면 전화를 돌려주세요.”
목구멍까지 말이 나왔지만 말하지 못했다. 말을 거는 순간 또 화를 내며 욕할 것 같은 골치 아픈 생각이 들었다. 서서 통화하던 아주머니는 더 편하게 자세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
아주머니가 문에 몸을 기댄 순간이었다. 자동문이었던 앞문이 스르르 열렸다. 무게중심이 바깥쪽으로 치우쳐있던 터라 아주머니는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밖으로 튕겨 나가버렸다. 아주머니는 놀란 표정으로 매장 안으로 들어와 다시 전화기를 부여잡았다. 다행히 짧게 몇 분 이야기하더니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돌려줬다.
이후 아주머니는 캐리어를 정리하고 매장을 나갔다. 아주머니가 사라진 뒤 난 튕겨 나간 아주머니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자동문이 열리고 아주머니는 홀연히 사라졌다. 생각할수록 킥킥 웃음이 나와 욕먹었던 마음이 자연스럽게 풀리고 이후 업무에 다시 집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