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받은 급여를 찾으러 헐레벌떡 편의점에 뛰어갔다. 전화를 통 받지 않는 사장님에 대한 불신이 커졌지만 애써 억눌렀다. 하지만 매장 전화로 연결했을 때 단번에 사장님의 모습에 확신했다.
‘전화를 골라 받고 계셨구나. 내 전화를 피하고 계셨구나.’
사장님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어. 무슨 일이냐?]
“사장님. 저…. JY예요.”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사장님의 목소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JY라고? 그래. 무슨 일로 가게 전화로 전화했냐?]
그렇게 연락이 되었으면 했는데,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뜸을 들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솔직하게 말했다.
“저. 그게…. 지난번에. 오늘 제 월급 주신다고 하셔서요. 사장님께 전화를 계속했는데 안 받으셔서 가게 전화로 했어요.”
[그게. 내가 아파서 잠자느라 전화 온지도 몰랐네.]
“아. 그러셨군요. 그럼 오늘은 안 나오세요?”
사장님과 전화가 이어질수록 점점 위축되었다. 겨우 꺼낸 급여 이야기는 대화 주제가 되지 못했다.
[아니. 애 집에 보내야 하니 늦게라도 나가야지.]
“아. 그럼 혹시 제 월급은 어떻게 되나요?”
내가 묻자 사장님은 대답하지 않으셨다. 잠깐의 침묵이 있을 뿐이었다. 난 사장님의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전화 건너편은 묵묵부답이었다. 매장 전화를 오래 붙잡고 있기 눈치 보이고, 기다리다 지친 난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럼 제가 내일 오전에 가게로 갈까요? 괜찮으세요?”
[어. 그래.]
사장님의 목소리엔 언짢은 기색이 가득했다.
“네. 내일 오전에 다시 찾아뵐게요.”
전화를 끊고 전화기를 오전 언니에게 건넸다. 종일 애먹었지만 일단락된 것 같아 조금 가벼운 걸음으로 집을 돌아갔다.
다음 날 오전 10시, 난 편의점으로 향했다. 사장님은 카운터 안쪽 의자에 앉아 계셨다. 일어서시려다 내 얼굴을 보시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 계셨다. 오전 10시는 한가한 시간이라 매장에 사장님과 나 단둘이었다. 카운터 쪽으로 다가가자 사장님은 날 보시더니 크게 한숨을 쉬셨다. 그리고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하셨다.
“JY야! 너! 너무 차갑다. 네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
“네?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 아파서 못 나왔다는 사람한테 괜찮은지, 그걸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게 기본이지 않니?”
사장님이 아픈지도 몰랐다.
“넌 전화해서 돈을 먼저 물어보냐! 난 네가 이렇게 매정하고 차가운 사람인 줄 몰랐다!”
사장님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숙이시곤 절레절레 내두르셨다. 아파서 매장에 못 나올 정도라면 먼저 연락을 주시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 전화는 모두 무시하시고 매장 전화만 받으셔 놓고선 내게 먼저 안부를 묻지 않은 거로 책망하시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장님은 날 향해 매정하고 차갑다면서 이런 사람인 줄 몰랐다고 계속 반복하셨다. 난 연신 죄송하다고 말하며 이 상황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그때였다.
“진짜 난 네가 착하고 좋은 사람인 줄 알았다 이렇게 매정하고 차가울지 몰랐어!”
“죄송합니다.”
“안 되겠다! 너 저번에 사기당한 10만 원 나하고 너하고 반반 5만 원씩 나눈 거 무효다! 5만 원 지금 월급에서 빼야겠다!”
사장님 지인을 사칭한 사람에게 10만 원을 내줬을 때의 일을 다시 꺼내셨다. 그 당시에 10만 원을 드렸을 때 사장님은 한사코 반반씩 하자고 하셨다. 내가 먼저 반반 부담하자 부탁한 것도 아니었다. 감사했던 마음이 단번에 없어졌다. 사장님은 지갑에서 돈을 꺼내면서도 계속 차갑다는 말을 반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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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을 주실 땐 이런 말도 하셨다. 차갑다는 말 뒤에 있던 본심이 이제야 나왔다.
“내가 그래도 너 야간 일 그만두고 오전으로 더 일하면 내가 도와준 5만 원 그대로 뒀을 거야. 일을 안 한다고 하니까 난 돌려받아야겠다!”
“네 알겠습니다. 여기 5만 원이요.”
마지막 말을 듣고 사장님께서 왜 반복해서 차갑다는 말을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관두게 되자 과거 내가 매장에 손실을 끼친 5만 원이 떠올라 아까우신 것이다. 그만둔다는 이유로 돌려달라고 말하기엔 면이 서지 않아 어젯밤 전화를 두고 계속 내가 냉정하다고 말하며 기회를 보신 것이다.
몸은 피곤하고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받은 급여에서 다시 5만 원을 꺼내 돌려드리고 매장을 빠져나왔다. 내가 나갈 때까지도 뒤에선 차갑다, 매정하다는 말이 들렸다. 걸어서 10분도 채 되지 않은 편의점을 다녀오는 게 진이 빠지는 일이 될 줄 몰랐다.
오전 11시가 다 돼서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는 외출하셨고 언니들은 학교에 가서 나 혼자였다. 받은 돈을 세는 데 참고 참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내가 일한 대가를 받으려고 한 것뿐인데 어느새 난 냉정하고 매정한 죄인이 되어 있었다.
겨우 급여를 받고 그중 5만 원을 돌려드렸지만 사장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5만 원을 돌려달라는 사장님의 말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겐 진상 손님과 똑같았다. 오래 일할 줄 알고 5만 원을 메꿔준 건데, 관둔다면 다시 돌려줬으면 좋겠다. 원하시는 걸 바로 말씀하셨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사장님은 내가 가게를 들어가 나올 때까지 나를 차가운 사람으로 매도했다.
난 사람 대하는 것에 미숙해 당하고 넘어가기 일쑤다. 언니들은 내가 과도하게 친절하다고 한다. 고치려고 노력하고, 당당하게 말하려고 해도 쉽게 되지 않는다. 변하는 게 쉬울 것 같으면, 할머니 말대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고 남았을 거다. 야간 알바 시급도 사실은 야무지게 말했어야 했고 사장님이 몰아세울 때도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했다. 뒤늦게 후회만 했다.
또 나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미숙하다. 눈물이 나오려고 하면 내가 나를 꼬집거나 때려서 어떻게든 막는다. 예전엔 울면 안 되고,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울려고 하면 내가 나를 막아서 버린다. 울고 싶어도 말이다. 하지만 겨우 급여를 받고 집에 와 돈을 세는 도중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었다. 참고 참았던 감정에 짓눌려,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났다. 돈을 세는 내내 눈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첫 편의점 알바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