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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유이 Jul 18. 2020

05. 더 이상 야간은 못 해! (전편)

2011년 8월 말의 일이었다. 야간 알바를 한 지 3개월 정도가 되었을 무렵이었다. 익숙해졌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망가져 가는 기분이었다. 하루하루 일하는 게 너무 괴로웠다. 야간 알바에 적응을 한 사람도 있고 잘 맞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적응하지 못했다. 오전 타임으로 했을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았는데. 후회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야간 타임에 일하면 생활 패턴이 완전히 뒤바뀐다. 밤에 일하기 때문에 낮 시간에 자면서 에너지를 비축해야 다시 밤에 일할 수 있다. 하지만 잠을 청해도 잘 수 없을 때가 많았다. 몸은 너무 지친데 정신은 말똥말똥했다. 

 ‘자야 된다. 자야 된다.’

속을 되뇌며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집에 할머니가 계시고 낮엔 대학생인 언니들이 있다. 옆방에서 들리는 언니들의 대화 소리, 설거지 소리, 방을 걸어 다니는 소리 작은 것 하나하나에 귀가 예민하게 반응했다.     


27살 때 처음으로 내 방이 생겼다. 그전까지는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다. 햇빛은 커튼을 뚫고 방안에 가득 들어왔다. 낮에 자야 하는 나 때문에 할머니는 유일한 낙인 텔레비전도 포기하셨다. 이불 안에 깊숙이 몸을 넣고 몇 시간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다. 하지만 밤에 잘 때처럼 개운한 느낌은 없었다. 선잠을 자고 출근하면 일하는 내내 난 졸음과 싸우며 버텼다. 내 몸도, 환경도 야간 일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고심 끝에 더 이상 이렇게 계속 일할 순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할머니는 내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하셨고 언니들은 진즉 관뒀어야 했다고, 그동안 오래 잘 버텼다고 위로해줬다. 난 출근하고 사장님과 교대할 때 조심스럽게 사정을 말씀드렸다.


 “사장님. 죄송한데 제가 밤에 일하기 너무 힘들어서 다니기 어려울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다행히 사장님은 내 상황과 처지를 이해해주셨다. 마침 오전 알바 언니가 관두는데 시간대를 바꿔서 할 생각은 없는지 물으셨다. 난 3개월 동안의 야간 일로 졸음과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다. 지금 쌓인 피로도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는데 바로 오전 타임으로 바꿔서 할 자신이 없었다.

 ‘진짜 괴롭다. 쉬고 싶다. 자고 싶다.’

내 머릿속에는 세 문장만 맴돌았다. 내게 당장 필요한 건 충분한 휴식이었다.

 “죄송합니다. 당분간은 쉬고 싶어요.”


사장님이 모처럼 주신 제안을 거절했다. 근무는 8월 말까지로 하기로 했다. 퇴사일을 생각하며 악착같이 버텼다. 한동안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쉬면서 건강을 되찾고 싶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8월 31일이 지났다. 백수가 되었지만 해방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기분 좋게 누워 잘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9월에 예상치도 못한 문제가 터졌다.


알바를 하는 동안 급여를 통장으로 받지 않고 현금으로 직접 받았다. 첫 시급은 4천 원이었다. 오전 2개월, 야간 3개월 총 5개월 기간 동안 시급은 변함없이 4천 원이었다. 처음 야간으로 바꿨을 땐 시급을 더 높게 주는 줄 알았다. 보통 알바 구인공고를 보면 야간은 시급이 8천 원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사장님은 시급은 시간과 관계없이 똑같다고 하셨다. 언니들은 시급 이야기를 듣자, 근무시간을 바꿨을 때처럼 타박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맨 처음 인더xx편의점에 알바를 했을 때 인수인계를 해준, 나보다 한 살 어린 오후 근무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이 편의점은 오래 일해도 시급을 올려주지 않아 더는 다닐 수 없어 그만둔다고 했다. 내게도 여기 말고 다른 곳을 찾는 게 나을 거라며 조언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아이는 정말로 그만뒀다. 일을 배워 적응할 생각에 정신없어 조언을 흘려들은 게 아쉬울 정도다.

      

야간 타임이 오전과 시급이 똑같다고 했을 때 그만뒀어야 했다. 언니들도 관두라고 역성했다. 그럼에도 야간 일을 한 이유는 시급도 중요하지만 스물두 살 내겐 경험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한 알바고 내가 선택해서 야간으로 바꾼 만큼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야간은 손님이 적어 편할 거라는 잘못된 판단도 한몫했다. 

    

지금의 나라면 과거의 나에게,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원든 원치 않든 일정량의 경험은 하게 되니 사서 고생하지 말라고 충고해주고 싶다. 또 편의점 손님의 수 보다 중요한 건 진상 손님의 위력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보통 손님 100명과 끈질긴 진상 손님 10명이 있다면 고민하지 않고 난 전자를 택할 거다. 몸이 피곤한 건 며칠 쉬면 회복되다. 하지만 진상 손님들의 눈빛과 말은 내가 잊으려고 해도 불쑥 튀어나와 나를 괴롭힐 때가 많다. 덧붙여 야간 진상들은 대부분 술을 먹고 오니 손님이 수가 적어도 오전보다 힘들다.


사장님께선 9월에 급여를 주신다고 했다. 약속한 날인 9월 첫째 주 월요일이었다. 월급을 받으러 편의점에 가기 전, 사장님 핸드폰으로 확인차 전화했다. 사장님께서 계시는지 알아야 헛걸음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관두고 며칠이 지났지만 밤낮이 바뀌어서 적응이 되지 않아 비몽사몽이었다.


점심시간 전후였다. 사장님께서는 받지 않으셨다. 전화를 끊고 10분이 지나 다시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

오후 3시쯤 다시 전화를 했다. 역시 통화를 할 수 없었다. 약간 안 좋은 예감이 들었지만 낵 전화한 타이밍이 안 좋은 거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저녁을 먹도 다시 다시 전화했지만 역시나였다. 신호는 갔지만 끝까지 받지 않으셨다. 하루 종일 연락을 닿지 않자 일부러 피하는 건 아닌 가 싶을 정도였다.

     

8시에 한 번 더 전화를 했지만 사장님은 받지 않으셨다.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커져갔다. 돈을 떼먹는 건 아닌가 싶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적은 금액일지 모른다. 하지만 내겐 한 달을 일한 월급이었다. 약속한 당일에 연락이 두절된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옷을 갈이 입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게엔 오전에 일하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 사장님 오늘 안 나오셨어요?”

 “오늘은 일이 있어 안 나오셔서 내가 더 늦게까지 일하게 됐어.”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언니에게 사정을 털어놨다.

 “사장님께 오늘 네 번 넘게 전화를 했는데 연락이 안 돼서 찾아왔어요. 혹시 가게 전화로 사장님한테 전화해보면 안 될까요?”

 “자. 여기.”

언니는 흔쾌히 계산대 안쪽에 있던 전화기를 내게 건넸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사장님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연결음이 채 두 번 울리기도 전 사장님은 전화를 받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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