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동안 어려웠던 일들, 약을 바꾸면서 나아진 상황들을 상담 쌤과 나눴다. 심리상담이 으레 그렇듯 좋은 말을 많이 들었다. 시간이 꽤 지났을 때 불현듯 내가 또 까먹고 있단 걸 깨달았다.
‘아아아! 이건 꼭 말해야 해!’
“선생님!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나는 흥분하면 두서없이 말하고 주어나 목적어를 빼놓는 경향이 강하다. 분명히 머릿속에서는 말을 했는데 이상하게 입에서는 나가지 않는다. 5초 광고도 못 견디는 사람답게 말도 중간중간 스킵해버린다.
“고양이, 제가 고양이를 입양해도 될까요?”
“갑자기 고양이요?”
“제가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잖아요. 어쩌다 보니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워보면 어떨까 싶어서...”
“제가 강아지를 키워봤는데 강아지는 비추예요. 회사 다닐 걸 생각하면 강아지 보단 고양이가 나아 보여요.”
“근데 사실... 제가 일을 안 하니까 키워도 될지 말지 고민이 많이 돼요.”
“크루아상 씨. 경제적인 이유 하나만 보기에는 반려동물한테 받는 게 생각 이외로 많아요. 나는 크루아상 씨가 고양이를 키우는 건 강추예요, 강추! 아! 개냥이가 왔으면 좋겠네!”
비추라는 말을 들었을 땐 내 글이 비추를 먹은 것처럼 시무룩해졌다가 강추라는 말에 비약적으로 반등했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자 힘이 솟았다. 묵혀놨던 속내를 먼지떨이로 아낌없이 털었다.
“사실 이거 고민한지는 꽤 되었는데... 선생님한테 꼭 여쭤보고 싶었어요.”
“나한테? 왜요?”
“선생님은 오롯이 저만을 위한 판단을 해주시잖아요. 그래서 자신 없을 때 선생님께 꼭 자문을 구하고 싶었어요.”
그날 상담은 고양이 입양 허가증을 받은 기분이었다. 이제 정신과 의사쌤만 남았다. 선생님은 어떤 답을 내려주실지 궁금했다. 심리 상담이 있고 약 일주일 후 나는 홍대의 정신의학과로 비장하게 걸어갔다. 가는 길, 심리 상담 때처럼 중언부언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말할지 대본을 머릿속으로 궁구했다. 이윽고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에 들어가자 흰가운을 입고 계신 선생님이 앉아 계셨다. 지난번 방문 때처럼 약에 대한 반응, 이제는 잠을 좀 잘 수 있고 의욕이 생긴 것, 끼니도 잘 챙겨 먹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러고 나서 고양이 입양 건을 말씀드렸다.
“내가 사랑을 쏟을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건 좋죠. 다만 고양이를 키우면 어디 멀리 못 놀러 가고 신경 써야 하는 게 꽤 되긴 해요. 그래도 키우면 좋죠. 10년 넘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할 가족이 생기는 거니까.”
말은 시니컬하게 하셨어도 눈빛은 다정하셨다. 두 선생님이 모두 합격 도장을 찍어주시자 마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고 난 다음의 흥분감이 들었다. 거금을 들여 캣타워, 화장실, 모래, 사료, 그릇, 장난감 등을 거침없이 주문했다. 어떤 고양이가 올지 아무도 모르지만, 나는 작명이 앞섰다.
‘이름은 뭘로 하지. 의미 있고 유니크한 걸로.’
‘난 일본어를 전공했으니까... 복... 후쿠!’
‘그래. 후쿠로 하자! 후쿠!’
이름을 정하고 나서 예전에 실수로 잘못 보낸 분한테 다시 연락을 했다. 왜 상황이 바뀌었는지 다시 설명하자 입양 계약서를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그날 늦게까지, 근로계약서를 살필 때의 매의 눈으로 입양 계약서를 읽고 공란에 채워 넣었다. 발송 버튼을 누르자 몸에서 힘이 쫙 빠져나갔다.
‘오늘도 글을 안 썼네.’
입양 희망일을 계약서 작성일에서 약 5일 뒤로 해놨다. 가족들에게 말하니 너무 느슨하게 했다며 타박했다. 이미 보낸 걸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상황은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읽음 표시가 떠있지만 답장이 오지 않자 마음이 촉박해졌다. 실례를 무릅쓰고 다음 날, 입양 계약서 건에 대해 확인했냐고 연락했다. 입양자분이 몸이 아파서 도저히 움직일 수 없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이 급해졌다. 그다음 날에도 문자를 보냈다.
[혹시 제가 번복하고 자주 연락을 드려서 불쾌하신 사항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씀 부탁드립니다. 만약 입양자로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시면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바로 전화가 왔다. 그런 건 절대 아니며 아프다는 말씀을 계속하셨다. 나에 대한 상황을 다 말씀드렸다. 다만, 집에 오는 것을 왜 꺼리냐고 하셔서 반지하라고 했더니 그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다.
[입양 계약서 검토 후 전화 인터뷰하고 필요하면 사전 방문, 이후 인계할 때 자택 방문 순이에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27일까지, 늦어도 28일까지는 어떻게 안 될까요? 제가 28일이 생일이라서요.”
[제가 내일 병원 가보고 연락드릴게요.]
“네.”
당시 27일이 입양 희망일이었다. 나의 간절한 바람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오래된 초콜릿을 잘못 먹고 입원을 하게 되었어요. 11월은 어렵고 12월 초에는 가능할 것 같아요.]
“네 알겠습니다.”
가족들에게는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내가 바보 같다고 했다. 입양 계약서를 보내고 난 후 나는 예비 후쿠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면서 들떠 있었다. 하지만 불확실한 기다림은 갈증에 바닷물을 마시는 기분과 다르지 않았다. 12월 초까지 기다려서 입양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 하지만 12월 초까지 기다린 후에 전화 인터뷰(당시 나는 면접이라 여겼다)에서 떨어진다면? 그때는 정말 모든 것이 박살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난 워낙 감정이 극단적인 사람이다. 결국 그다음 날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연락 주신 이후 가족들과 논의하고 잠이 안 와서 계속 생각해 본 결과, 아픈 분께 계속 연락드리는 것도 결례인 것 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는 저 말고 다른 사람과 연인 것 같아요. 저도 다른 고양이와 인연인 것 같고요. 입양신청서는 폐기 부탁드립니다.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집안은 뜯지 않은 박스로 가득했다. 내가 호기심에 뜯은 유일한 장난감이 눈에 보였다. 고요한 집에 혼자 앉아서 잡아줄 고양이 없는 장난감을 두세 번 무심코 흔들었다.
‘이거 다 반품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