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본격! 고양이 맞이하기

1인 가구에서 1인 1묘 가구로

나의 상상에 불과했지만, 자문위원들(심리쌤과 의사쌤)이 부여한 입양 허가서가 무슨 대수냐 싶었다. 몇 번 찔끔, 또 몇 번 소리 내서 울었다. 언니는 내가 바보 같다며 가장 날 몰아붙였으면서 상심하는 모습에 가장 크게 위로해줬다. 감정과 상황을 분리하라고도 해줬다. 알고 있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을 돌보라는 책을 20대 초의 자기 계발서 못지않게 읽었다. 지금 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해주고 일상에 감사하면 된다. 알아! 알고 있다고. 고민 끝에 시도한 입양이 파투난 시점에서 괴롭고 서글픈데, 말하기도 전에 거절당한 기분인데 어디서 감사를 하란 말이야!


감정과 상황은 돼지고기 뼈 안쪽에 붙은 살코기처럼 아주 딱 달라붙어 있다. 젓가락으로 후벼 파야지 겨우 살코기가 분리되는 것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물론 깔끔하게 떨어져 나오면 묘하게 기분이 좋지만.

'나는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 애초에 내가 시도해봤자지.'

익숙한 체념이 애착 인형처럼 내 옆에 나타났다. 음울한 감정을 내뿜는 나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는지 동생까지 가세했다. 위로에 위로를 거듭해서 받았다. 겨우 다시 용기를 얻었다. 카페를 들락거리면서 임보 글에 다시 집중했다. 그중 하나의 글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약 2주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서울] 임시 보호 구해요.


구조자는 종로구에 살고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어서 바로 문자를 보냈다. 그전에 너무나 느릿하게 진행되었던 것과 달리 답장도 속전속결이었다. 집에 타인을 들이는 것은 이제 내게 아무런 제약도 되지 않았다. 마지막 이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나는 연락 한 이틀 뒤인 11월 27일 구조자, 고양이와 만나기로 약속했다.


차곡차곡 배송된 물품을 진열할 때부터 청소는 시작되었다. 쓸고 닦았다. 한 번 닦고 뒤돌면 처음엔 보이지 않던 먼지가 보였다. 침대 밑, 행거 안쪽, 책장 밑, 장롱 밑. 고양이가 들어갈 법한 곳은 어떻게든 닦았다.


헐레벌떡 다이소로 뛰어가서 손님용 실내화도 샀다. 방묘문, 방묘창으로 쓸 네트망도 샀다. 쿠키도 준비하고 들뜬 마음은 점점 부풀어올랐다. 다시 집에 왔는데 구석지에 머리카락이 보였다. 한숨을 쉬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물티슈, 빗자루, 돌돌이 등 나의 청소 도구를 꺼내서 열심히 쓸고 닦았다. 눈에 보이는 곳을 닦고 또 닦아도 성에 차지 않았다.


‘만약 내일...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먼지를 구조자가 본다면?’

교정지를 수차례 봐도 책이 출간되면 미처 보지 못한 오탈자가 눈에 들어온다. 띄어쓰기 하나라도 잘못되어 있으면 석고대죄를 하고 서점 앞에서 앉아 있어야 될 것 같았던 짧았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내가 만들지 않은 벽지의 얼룩은, 마감을 지키지 않은 건 작가지만 그 비난은 내가 받아야 했던 것처럼 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당당히 그 위세를 드러냈다.


다음 날, 구조자가 집 근처로 왔다. 이동장을 들어주려고 했는데 그 안에 고양이는 없다고 했다. 버스에서 너무 울어서 구조자의 주머니 속으로 쏙 들어간 아기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 너구나!’

긴장감, 설렘,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 집으로 초대해서 1인용 소파베드를 꺼냈다. 서둘러 커피를 주고 쿠키를 접시에 올렸다. 고양이는 이미 내 방에 놓여서 이리저리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신입사원 면접을 보는 사람처럼, 긴장은 최대한 감추고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우리 둘은 코로나 19가 무서워서 마스크를 쓰고 대화했다. 구조자는 준비한 안내문을 건넸다. 나는 그녀와 아이에 대해 대화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자기 이야기를 해도 관심이 없는 고양이 후쿠는 침대 밑에 숨어있다가 살며시 나와 방 이곳저곳을 살폈다.


세 시에 만난 우리는 다섯 시에 헤어졌다. 그동안 그녀가 중국에서 유학했다는 점과 투룸에서 언니 두 명과 살고 있다는 것, 그녀의 고양이의 이름을 알게 되었으며 오랜 시간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연도 들었다. 그녀의 고양이는 후쿠를 아주 살뜰히 보살폈다. 후쿠도 엄마인 줄 알고 고양이를 따랐는데 어느 날 젖을 물려고 하는데 고양이가 놀라서 몸을 뺐다고 했다. 후쿠의 엄마 고양이는 수컷이었다는 웃픈 이야기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서는 구조자에게 갑자기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냉장고에 있던 허쉬 초콜릿 우유를 여섯 개를 꺼내서 언니들과 두 개씩 먹으라고 싸줬다. 줄만한 게 그것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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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수컷) 엄마 고양이와 후쿠


구조자가 돌아가고 나자 방이 넓어졌다. 갑자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참, 내가 해냈다는 모종의 성취감과 설렘, 내가 너의 동반자라는 생각에 감정이 일렁였다. 혼자 있을 땐 보일러 하나도 벌벌 떨면서 켰다. 보일러를 틀 바에는 카디건, 플리스, 바람막이를 입었다. 그런데 손님이 오고, 고양이가 온다는 일념은 내게 가스비 걱정을 한순간에 잊게 했다. 방은 후덥지근했다. 고양이는 침대 밑에서 몸을 지지며 자고 있었다. 조용히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첫 촬영. 침대 밑에 쌓여있는 책들, 급하게 숨겨놓은 그곳에 몸을 기대며 자고 있던 후쿠.



‘엄마에게 버려진 건 너나 나나 똑같구나. 우리, 서로를 부둥켜안고 행복하게 살자.’

‘내가 너를 꼭 행복하게 해 줄게.’

‘다른 건 몰라도 너를 꼭 책임질게.’

‘앞으로 20년 잘 부탁할게.’

시작하자마자 끝을 생각하는 건, 우리 세 자매의 나쁘지만 고질적인 버릇이다. 만남과 이별, 동전의 양면 같은 거니까. 없이 사는 사람이 가격을 따지고, 세일에 목을 매고, 물건을 쟁여두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 먼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쥐어짤 듯이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애틋해진다. 한계는 지금을 비할 데 없는 소중한 찰나로 만든다.

‘우리 꼭 행복하자.’

그렇게 나는 후쿠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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