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임보, 아뿔싸!

‘임시보호, 탁묘 게시판’

그동안 입양이란 단어에 꽂혀 있었다. 바로 밑에 있는 ‘임시보호(줄여서 임보)와 탁묘’라는 낯선 단어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어이쿠 실수로 클릭했네! 이건 아니고 자주 찾는 게시판에 흥미가 떨어지니 다른 게시판을 누른 게 다였다.


‘아! 이거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년까지, 입양될 때까지 등 기간을 두고 고양이를 임시 보호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고양이를 키울 수 있는지 자신이 없던 나는 임보라는 타협점을 찾았다. 엉덩이보다 머리가 무거운 나는 생각은 많지만 실행력이 대단하지 않다.

‘원룸, 자취생은 안 된다니까 이건 제하고.’

‘여긴 너무 거리가 머네.’

‘집까지 찾아온다고? 가족을 제하고 외부인이 들어온 적도 없는 곳에 생판 남을?’

‘입양 전제? 아직 난 나를 믿을 수가 없다고.’

거리, 조건 등이 맞는 글에는 좋아요를 누르면서 후보를 쌓으면서도 좀처럼 자신감이 붙지 않았다. 불면증을 앓고 있기에 임보 게시판에 거의 뿌리를 박고 있어서 새벽 세네 시에도 열심히 글을 봤다. 여러 고양이를 보면서 내가 어떤 고양이를 좋아하는 지도 알게 되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치즈 태비(황갈색과 흰색 등의 밝은 색의 무늬가 있는 고양이)를 선호했다. 어느 날 치즈 개냥이 입양 글을 발견했다. 열심히 읽고 또 읽었다.

‘집 방문하는 건 협의해서 안 오는 걸로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임보 신청을 해보자!’

양식에 맞춰 글을 쓰고 하단에 아래와 같이, 지금 보면 참으로 구구절절하지만, 당시엔 정말 절실한 마음을 담아 썼다.


“안녕하세요. 김크루아상입니다. 임보처 구하는 글 보고 연락드려요. 저는 집사를 꿈꾸며 냥이 공부를 하고 있어요. 내년 1월 말까지는 휴식 예정되어 있고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올해 7월부터 프리랜서 준비 중인데 1월 말까지 아무 소식이 없으면 다시 취업하려고요... 다만 그것도 일반 직장인보다는 근무시간이 짧은 걸 찾을 예정이에요.) 집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하루 2시간 산책 외에는 집에 붙박이로 붙어있어요. 아무래도 집사 경험이 없다 보니 도움이 될지 확신이 안 서서 먼저 연락을 드립니다.

왜 지금 당장 입양을 안 하는지 궁금하실 텐데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경제적으로 여유를 어느 정도 확보하고 싶어서요. 아이 병원비에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아서요. 본가에서 언니가 햄스터를 키우는데 지난여름 제가 사는 곳에 데려와 잠깐 돌봐준 경험이 있어요. 저의 장점은 연락이 빠른 점과 사진 등을 자주 보내드릴 수 있는 점이에요. 저희 가족의 햄스터 카톡 단체방이 있는데 언니가 쉬지 않고 올리며 항상 아이 근황을 공유하거든요. 만약 제가 아이를 임보 한다면 가족들과도 맡기시는 분과도 그렇게 할 예정이에요 괜찮다고 하시면 지원해주시는 물품 외에는 쿠팡 로켓 배송으로 빠르게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래서 임보 가능 기간이 11월 23~24일부터예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내고 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다시 글을 봤다. 아뿔싸! 입양 전제 임시보호였다. 이미 게시글을 열 번도 넘게 읽었으면서 메시지를 보냈을 때는 그 내용을 깡그리 잊었을까. 분명히 제대로 읽었는데 마음을 담아 글을 쓰면서 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 잠깐 전원을 차단했나 보다. 바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나마 결심했던 게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왜 제대로 못 읽었지?’

‘왜 하필 보내도 입양 전제로 보낸 거지?’

‘난 고양이를 키울 자격이 없는 걸까?’

‘난 역시 고양이를 키우면 안 돼.’


힐난과 자책은 어깨동무를 하며 나를 짓밟았다. 나는 글을 잘 못 읽었을 뿐인데 당시에는 집사의 자격을 박탈하고 옷을 쫄딱 벗겨서 집 밖으로 나를 내쫓았다. 실수하면 근본적인 원인부터 부정하고 따지고 드는 내 습관은 영락없이 제 기능을 발휘했다. 친구와 싸우면 친구와의 관계 자체를 후회했다. 기껏 산 상품에 흠집이 있으면 판매자나 배송 기사를 탓하기보단 ‘난 원래 재수 없는 아이니까 이런 게 오는 게 당연하다’와 ‘사지 말아야 할 것을 괜히 샀다’가 양분해서 나를 괴롭혔다. 그랬기에 나는 고양이 카페를 가입한 것을 후회했고 고양이를 생각한 것 그리고 혼자서 살지 못하고 반려묘를 들일 생각을 한 나의 연약함을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다. 나는 몇 시간 뒤에 심리 상담이 잡혀 있었다. 비록 실수를 했지만 이걸 터놓을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심리 쌤과 정신과 의사 쌤. 나는 아무도 모르게, 당사자까지 모르게 두 분을 나의 고양이 입양 자문위원으로 선임했다. 내가 고양이를 입양해도 되는지 의견을 여쭙고 행동하면 내 행동에는 조금 더 근거가 생긴다. 한 다리가 짧아 삐그덕거리는 의자에 자문위원의 의견은 그 다리를 고쳐줄 거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나의 실수를 용서해줄 수 있었다.


‘선생님께 묻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 거니까. 이번엔 좀 눈감아주자. 선생님이 아니라고 하면 바로 포기하는 거야.’

‘그래, 뭐가 급해서 혼자 서둘렀다가 그런 실수를 했어!’

나는 저녁 7시가 되길 손꼽아 기다렸다. 6시 20분 집을 나섰다. 상담소로 걸어가는 길, 내 머릿속에는 ‘고양이 입양에 대한 자문 요청의 건’을 놓치지 않고 선생님께 말씀드려야 한다는 걸로 가득했다. 40분 후 나는 상담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를 마주했다.

‘크루아상 씨. 어서 와요.’

자문의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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