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락집 _ 안녕 A씨

A씨 _ 1

by 원유

현재는 배우의 꿈을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뭐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자존감 바닥인 무직 30대다. 현재는 친구인 자춘과 함께 B급 상황극 컨텐츠로 관심을 벌어보려다 그마저도 망치고 낙담한다. 하지만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된 시사프로그램 조감독 김모로 부터 연락을 받고 어떤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는데..


S#1 해질녘의 거리

지쳐서 퇴근하는 사람들과 들떠서 번화가로 향하는 젊은이들. 혹은 각자의 이유들로 거리를 떠돌거나 머무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길가에 붐비는 많은 사람들 사이로 마르고 작은 체구의 30대 남자 현재가 보인다. 현재는 긴장된 시선으로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지하도로 들어간다. 지하도를 지나는 사람들 가운데 지하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현재. 현재는 불안한 듯 폰과 주변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한다.


현재 : 예. 저 여기 와있는데요. 네. 땡땡이 지하도요. 아니 지금 15분이 지났는데 이렇게 늦으시면 어떡합니까. 예. 아니 지금 저한테 짜증내시는 거예요? 그쪽이 지금.. 아. 예. 만나서 얘기합시다. 만나서 얘기해요.


폰에 언성을 높이는 현재를 보고 젊은 청년들이 웃으며 지나가고 현재는 이가 기분이 나쁜 듯 인상을 찌푸리지만 젊은 청년들 중 건장한 남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눈을 돌린다. 건장한 남자가 지하도 끝으로 사라진 것을 보자, 현재는 몸을 풀려는 듯 스트레칭을 하다가 허공에 쉐도우 복싱을 날린다. 식은땀이 나고 긴장한 듯한 모습. 곧 반대편 지하도 계단으로 육중한 덩치에 츄리닝을 입은 20대 남자 승만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현재는 그를 알아본 듯 스트레칭을 멈추고 그를 응시한다. 멀리서 점점 가까워지는 승만, 현재는 더 긴장하는 듯 보이지만 애써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드디어 승만과 마주 선 현재. 현재는 승만의 덩치에 비해 너무나 작아 보인다. 두 남자의 살벌한 시선이 오가고 지나가던 행인 몇이 현재와 승만을 쳐다보며 지나간다.


승만 : 칼주먹님 맞으시죠?

현재 : 많이 늦으셨네요. 고라니님 맞으시죠?

승만 : 게시판에서 보던 이미지랑은 좀 많이 다르시네요.

현재 : 뭐. 제가 왜 칼주먹인지는 겪어봐야 아시겠죠?

승만 : 아유 존나 무섭네요. 혹시 연장 들고 온 건 아니죠?

현재 : 저 현피장소에 연장들고 가는 머저리 아닙니다. 근데 왜 늦으셨어요?

승만 : 엄마가 밥먹고 가라해서요.

현재 : 효자신가봐요.

승만 : 닭볶음탕이었거든요.

현재 : 좋아해요?

승만 : 네. 식사하고 왔어요?

현재 : 뭐 간단히 라면 먹고 왔어요.

승만 : 단백질 위주 식단으로 바꿔보세요. 그럼 훨씬 날걸요?

현재 : 지금 말랐다고 무시해요? 저 완전 실근육이예요.

승만 : 실근육? 말근육.. 뭐 그런 거랑 비슷한 거예요?

현재 : 만져볼래요?


현재는 팔을 걷어 앙상한 이두근을 보여주는데, 승만은 이를 만져보려다가 주변에 시선을 느낀다. 이미 현재와 승만의 찌질한 신경전을 보고는 몇몇 행인들이 이를 구경하고 있다.


승만 : 에이. 됐고요. 이제 그만 시작하시죠.

현재 : 그럴까요?


승만은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 끈을 고쳐 묵는다. 현재는 이런 승만을 내려다 본 체, 은근 그에 대고 쉐도우 복싱을 살짝살짝 해본다.


승만 : 뭐하세요?

현재 : 아, 시뮬레이션.

승만 : (웃음) 무슨 시뮬레이션을 하고 그러세요. 타이슨 명언도 안 들어 보셨어요?

현재 : 누구나 계획은 있다?

승만 : 쳐맞기 전 까진.

현재 : 근데 그거 진짜 타이슨이 한 말 맞아요?

승만 : (일어서며 몸을 푼다.) 뭔 상관이래요. 아, 가지고 왔어요?

현재 : 뭘요?

승만 : 각서요.

현재 : 아 맞다.

승만 : 아, 그걸 안 가져오면 어떡해요.

현재 : 뭘 그런 것 까지 준비를 해요 찌질하게.

승만 : 에에? 혹시 맞고 나서 드러누우려고 하는 거에요? 싸워서 다쳐도 딴 말 안한다는 각서가 있어야 제가 맘 놓고 칼주먹님을 패죠.

현재 : 뭐? 저를 팬다고요? 저 자꾸 빡돌게 할거에요? 저 무서운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매너지켜주세요 고라니님. 보호종이라고 안 봐드려요. 여기가 비무장지댄 줄 아세요? 여긴 전장이야.

승만 : 예예. 알았으니까 빨리 각서 써오시라고.

현재 : 말투가 상당히 기분 나쁘네. 고라니씨. 그러다가 저한테 맞아요. 맞을래요? 맞을 거예요?


현재는 위압적인 행동으로 승만을 몰아붙인다. 이 모습을 사람들이 보며 웃고 있고 누군가는 폰 으로 영상을 찍고 있다. 승만은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는 창피한지 고개를 돌리지만, 흥분한 현재는 계속해서 승만을 도발한다. 승만이 욱해서 현재를 때리려는 듯 손을 들자, 현재는 가볍게 몸을 피하며 가드를 홀리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승만 : 아, 존나 쪽팔리게 진짜.

현재 : 뭐? 쪽팔려?


현재는 드디어 승만의 옆구리와 복부에 주먹을 퐁퐁 꽂는다. 전혀 데미지 없어 보이는 펀치지만 사람들은 환호한다. 승만은 분노해서 현재를 잡으려 하지만 현재는 가볍게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하지만 결국 승만에게 잡히고 마는 현재. 승만은 현재 위에 올라탄다. 승만은 현재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듯 겁을 주지만 행인들은 지켜보거나 영상을 찍기만 할 뿐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그러자 현재에게 가볍게 뺨을 한 대 때린다.


승만 : 아저씨. 왜 까불어. 어? 맞고 싶어서 까불었어?


승만이 진지하게 주먹을 들어 현재를 때리려고 하지만 주변 사람들 아무 반응이 없자 현재와 승만은 각각 불안한 눈빛을 교환한다.


현재 : 도와주세요..


현재의 약한 모습을 보고 비웃는 행인들. 하지만 역시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현재는 불안한 눈빛의 표정에 승만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보내고 승만이 현재의 뺨을 연타로 때린다.


현재 : 누가 좀 도와주세요..!


 하지만 역시나 행인들의 반응은 없고, 하나 둘 씩 떠나간다. 승만은 현재에게 고개를 저으며 일어서려 하는데 누군가가 다가온다. 일어나려던 승만은 이를 느끼고 다시 자세를 잡아 현재를 누른다. 곧 여리여리해 보이는 20대 여자 행인이 다가오고 현재는 미소를 짓는다.


행인 : 저...

승만 : 왜요?!

행인 : 그..

승만 : 아! 빨리 말해요! 이 새끼 확 줘 패버리기 전에!!

현재 : 도와주세요..

행인 : 아저씨들..

승만 : 때리지 말까요?

현재 : 말려주세요..

행인 : 아저씨들 몰카죠?

승만 : 예?


행인의 말에 승만이 놀라서 할 말을 잃자, 이들을 구경하던 몇 안남은 행인들이 술렁인다.


행인 : 맞네. 야. 찍고 있지?

행인2 : 어, 계속 해.

행인 : 안녕하세요. 구기자TV에 구기자입니다. 지금 몰카하고 있었던 거 같으신데. 맞나요?

승만 : (놀라 일어서며 어딘가에 시선을 보낸다.) 어.. 아뇨. 그건 아니고요.


폰 영상으로 이들을 찍고 있던 통통한 30대 남자 자춘. 일이 꼬인 것을 직감하고는 폰을 내려놓고 구기자에게 향한다. 현재는 머리를 쥐어짜며 괴로워하고 구기자의 촬영동료는 이들의 모습을 찍는다. 곧 행인들이 다시 몰리기 시작한다.


구기자 : (현재에게) 몰카.. 몰카아니에요? 그냥 싸움하신 건가요?

현재 : 그냥.. 간단한 말다툼.. 이에요.

구기자 : 어? 지금 막 키 크신 분이 때리려고 하셔서 도움 요청하고 그러셨잖아요?

자춘 : (구기자가 현재에게 말라붙자 말리며) 아이참.. 같은 일 하는 사람끼리 이러지 마시고요.

구기자촬영 : 어어. 너무 붙지 말아요. 붙지 말아요.


구기자의 촬영 동료가 자춘에게 손을 대자 자춘이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 몸싸움으로 번진다.


현재 : 아니 현장에서 이러지 말고 말로 하시죠.

구기자촬영 : 아니 이 사람이 먼저 몸으로 하잖아요. 저 치려고 한 거예요?

자춘 : 그 쪽이 저 먼저 쳤잖아요.

구기자촬영 : 저희 구기자한테 너무 붙으려고 하니까 그런 거죠.

자춘 : 그러니까 치신 거잖아요.

구기자 : 왜 이런 곳에서 몰래카메라를 찍고 계신 거예요?

현재 : 몰래 카메라가 아니라. 설정 티비예요. 요즘에 사람들이 사는 게 각박하니까 이런 이벤트 만들어서 돕는 사람 나오면 선물도 드리고..

구기자 : 사는 게 각박하면 다른 방법이 더 많지 않을까요? 굳이 이런 곳에서 소란을 벌이면 시민들이 불편할 거란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S#2 지하도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현장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이를 보며 조롱하고 지나가는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이 몰려 복잡해진다. 현재 일행과 구기자 일행은 언쟁과 함께 몸싸움도 벌어지려고 하고, 나서서 말리려는 사람, 경찰에 신고하려는 사람도 나온다. 그리고 이를 먼발치에서 보고 있는 누군가. 누군가는 곧 구경을 멈추고 발걸음을 옮긴다. 누군가의 뒤를 따르는 카메라, 누군가는 지하도 안에 복잡한 인파를 지나, 지하도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길거리에 다양한 사람들을 스치고, 빨간불에 횡단보도에 선다.


횡단보도소년1 : 병신들 개 웃기지 않냐. 지하도에서 뭐 하는 거야.

횡단보도소년2 : 야. 그래도 저거 올려서 조회수 빨면 돈 꽤 될껄?

횡단보도소년1 : 진짜?

횡단보도소년2 : 어. 조회수 1이 1원이래.

횡단보도소년1 : 와. 쩌네. 조회수 100만이면 100만원이잖아. 우리도 저런 거나할까. 쟤네 누군지 알아?

횡단보도소년2 : 몰라? 찾아봐.

횡단보도소년1 : 걔네가 누군지 알고.


곧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고 누군가는 건너편으로 걸어간다. 수많은 인파들이 건너에서 건너로 스쳐간다. 수 많은 사람들의 희미한 모습들 위로 타이틀이 뜬다.


TITLE _ 안녕, A씨. Goodbye Mr. A.


S#3 늦은 밤 현재와 자춘의 아지트.

술병과 과자, 키보드와 마우스가 어지럽혀진 테이블 위로 부제 ‘1. A씨’가 뜬다.


현재 : 에이씨.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하게 술이 취해 무언가를 시청하고 있는 현재와 자춘. 현재는 깡소주를 마시려다 술이 떨어진 것을 알고 욕을 중얼거리며 다시 깡소주를 가져와 입에 붓는다. 현재와는 달리 해탈한 듯한 표정으로 소파에 늘어져 있는 자춘. 낡고 어두운 현재와 자춘의 아지트는 오래된 옛 공연장이다. 이곳에는 창이 없고 답답해 보인다. 빈 객석은 마치 무대 위에 초라한 현재와 자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고, 무대 한가운데에는 현자와 자춘이 앉아 있는 쇼파. 그리고 그 앞에 테이블과 컴퓨터, 테이블 위에는 어질러진 술병과 과자, 그리고 작은 모니터가 있다. 화면에는 현재네가 당했던 굴욕이 고스란히 인터넷 구기자TV에서 나오고 있다.


S#1-1 땡땡이 지하도와 인근 공사장.

구기자들과 다투던 현재네의 모습. 얼굴엔 모자이크가 되어있고 현재네의 굴욕적인 장면들이 채널 구기자TV에서 나오고 있다.


행인 : 아저씨들 몰카죠?

승만 : 예?


구기자TV 카메라에 비춰진 현재네의 굴욕적인 모습들. 구기자 촬영과 다투는 자춘의 모습이 폭력적으로 비춰진다.


현재 : 아니 현장에서 이러지 말고 말로 하시죠.

구기자촬영 : 아니 이 사람이 먼저 몸으로 하잖아요. 저 치려고 한 거예요?


자춘의 변명이 나오기 전에 바로 현재의 인터뷰 장면으로 넘어가고,


구기자 : 왜 이런 곳에서 몰래카메라를 찍고 계신 거예요?

현재 : 몰래 카메라가 아니라. 설정 티비예요. 요즘에 사람들이 사는 게 각박하니까 이런 이벤트 만들어서 돕는 사람 나오면 선물도 드리고..

구기자 : 사는 게 각박하면 다른 방법이 더 많지 않을까요? 굳이 이런 곳에서 소란을 벌이면 시민들이 불편할 거란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현재 : 일단, 조용한데 가셔서.. 이야기로.

구기자 : 먼저 말씀해주세요.

현재 : 뭘요?

구기자 : 공공장소에서 소란 피우신 거 민폐라고 생각 안 하세요?

현재 : 예. 죄송..


현재네와 구기자네는 어느새 한적한 외부로 나와서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네는 고개를 숙이고 초라한 모습.

현재 : 죄송합니다.

구기자 : 저 촬영하신 분께서는 아까 꽤 억울해 보이시던데 지금도 그러세요?

자춘 : 죄송합니다.

구기자 : 키 크신 분은 전문 배우세요?

현재 : 저희 셋 다 배우에요.

구기자 : 영상이나 연극하시는 거예요?

현재 : 보조출연합니다.

구기자 : 시민들의 불안함과 불편함을 야기하는 불법 촬영과 저질 상황극. 관심과 이목을 끌기 위한다지만 대중장소에서 눈살을 찌푸리는 행위들은 지양되야 겠습니다. 지금까지, 구기자 TV에 구기자였습니다.


S#3 다시 아지트에서 이를 보고 있는 현재와 자춘.

구기자TV 채널에 나온 자신들의 초라한 모습에 우울한 현재와 자춘. 각 영상당 십만 조회수가 넘어서는 구기자TV의 영상들.


자춘 : 승만이는 이제 안 한데.

현재 : ...

자춘 : 이제 진짜 안 한데.

현재 : 하지 말라 그래.

자춘 : 우리도 하지 말자.

현재 : 그럼 뭐해.

자춘 : 그냥. 평범하게 사는 거지. (현재 눈치를 보다가.) ..너는 당연히 연기 계속 하고.

현재 : ..어디서 해.

자춘 : 인터넷 개그단막이나 설정쇼 이런 거 말고도 할 거 많잖아.

현재 : 뭐.

자춘 : 극단들어가거나 오디션 보거나.

현재 : 그래서.

자춘 : 열심히 하는 거지.

현재 : 그래서.

자춘 : 언젠간 되겠지.

현재 : 언제?

자춘 : 언젠가.

현재 : 나는 그 언젠가까지 굶어죽지 않을 자신이 없다.

자춘 : 이거 하면 안 굶어 죽냐.

현재 : (외면 하듯 돌아누우며) 그래도 가능성이 있잖아.

자춘 : 가능성?

현재 : 누구라도 보잖아. 올려놓으면 1년에 한 명이라도 보겠지.

백 번 오디션 해봐라. 써주나. 써줘도 고만고만한 거.

자춘 : 다들 그렇게 올라가는 거야.

현재 : 다들이 아니라 그들이야.

자춘 : 어, 윤재다.


현재와 자춘이 보고 있던 영상에 톱스타가 된 윤재의 CF가 나온다. 화려하고 멋진 화장품광고.


자춘 : 용됐네 윤재. 연기학원 다닐 때 연기 진짜 못 했는데.. 니가 맨날 연기잡아주고. 어?

현재 : 새끼. 부럽다.

자춘 : 그래. 쟤도 엑스트라에서 단역, 조연, 주연 계속 올라간 거야.

현재 : 쟤는 학교를 갔잖아. 20대에 됐잖아. 나는 학교를 못 갔잖아. 지금 30대잖아.

자춘 : ...

현재 : 이거 밖에 없어. 어떻게든 이걸로 해야 돼.


S#4 다음날 오후 현재와 자춘의 아지트.

어질러진 테이블. 소파에서는 현재가 누더기 같은 이불을 덮고 자고 있고 소파 밑에서는 자춘이 침낭을 몸에 반만 걸친 채 자고 있다. 고요히 어질러진 현재와 자춘의 아지트. 곧 현재의 폰이 울린다. 하지만 현재는 일어날 생각을 안 하고 자춘이 몸을 뒤척인다.


자춘 : 알람 꺼..


현재는 이불에 얼굴을 부비며 괴로워하다 폰을 보는데 갑자기 깜짝 놀라 일어나 전화를 받는다.


현재 : 예 조감독님. 예예. 아뇨. 운동 중이었습니다. 예. 예.


전화를 받으며 구석 주방으로 사라지는 현재. 자춘은 자다 깨서 이런 현재를 본다.


S#5

어느새 주방에서 씻고 나온 현재는 부산스럽게 옷을 입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아직 잠이 덜 깬 자춘은 이런 현재를 보고 의아해한다.


자춘 : 소개팅 들어왔냐?

현재 : 오디션.

자춘 : 오.. 뭔데.

현재 : 지난번에 얘기했었나? 나 조감독이랑 술한잔 한 적 있다고?

자춘 : 응. 합석했다가 술값 덤탱이 맞은 거.

현재 : 야 이 씨. 덤탱이는 아니고.

자춘 : 우연히 조감독 알아보고 인사했다가 합석해서 술값 낸 거 아니야? 이름이 뭐였더라. 웃긴 이름이었는데.

현재 : 김모.

자춘 : (웃음) 맞아. 김모. 김모씨.

현재 : 김모 조감독이 급한 오디션 생겼다고 와보라네.

자춘 : 오.. 이제야 술 값하는 건가.

현재 : (콧노래를 부르며) 일단 가봐야 알겠지요~

자춘 : 잠깐. 그런데 우리가 김모씨 만났을 때가 시사탐구 때 보출 아닌가?

현재 : 응.

자춘 : 재연이구나?

현재 : 아직 몰라.

자춘 : 괜찮은 거였음 좋겠다.

현재 : 재연배우면 어때. 원래 재연배우하다가도 입소문 나면 단막극 나오고 드라마 나오고 하는 거야. (순간 성을 내며) 너 이씨. 어제 너 뭐라 그랬어. 단역, 조연, 주연 계속 올라가는 거람서?


현재는 자춘에게 달려들어 장난을 치고 자춘도 현재를 간지럽힌다. 현재가 바닥에 넘어지려 하자 자춘이 잡아준다.


자춘 : 야야야. 너 옷 망가진다.

현재 : 어. 자춘씨 조심해~

자춘 : (일어나 현재의 옷을 털어주며) 예~ 알겠습니다~

현재 : 내 가방 어딨지?

자춘 : (한 구석에서 먼지에 뒹굴던 가방을 찾는다.) 야. 이거 좀 그렇다. 내 거 가져가.

현재 : 아냐. 뭐 어때.

자춘 : 야. 그래도 이런 거 은근히 사람들 신경 쓴다.


자춘은 구석에서 자신의 가방을 찾아서 현재에게 내민다. 하지만 자춘의 가방도 현재의 가방보다 좀 더 깔끔했으면 했지 촌티나고 못생겼다. 하지만 내색 않는 현재.


현재 : 오케이.. 땡큐..!

자춘 : 너무 긴장하지 말고.

현재 : 내가 언제 긴장 빠는 거 봤니.

자춘 : 가서 너의 존재감을 새겨버려.

현재 : 간다!

자춘 : 화이샤!

현재 : 예아!


현재가 기운차게 아지트를 나가고 어질러진 아지트에 자춘 홀로 남는다. 현재가 나간 자리를 한동안 보다 웃는 자춘.


자춘 : 잘해.


S#6 오후 방송국 오디션실 앞 복도

긴장한 듯 굳은 자세로 앉아서 지정 대사를 보고 있는 현재. 현재는 지정대사를 보며 대사 체크를 하기도 하고 대사를 읊어보기도 한다. 하지만 현재와는 대조적으로 옆에 앉아 있는 다른 대기자들은 잡담을 나누거나 폰을 보는 등 여유롭다.


현재 : (옆 대기자에게) 저. 혹시 선생님도 A씨 오디션 보시는 거예요?

대기자 : 네. 여기 계신 분들 다 A씨 오디션 보는 걸 거예요.

현재 : (대기자들을 훑어보며) 아 네..

대기자 :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사실 오디션이랄 것도 없고, 카메라 테스트에요. 이미지 보고 뽑는 거지.

현재 : 네..


곧 오디션실에서 앞 대기자가 나오고, 김모가 문에서 고개를 빼쭉 내밀어 현재를 본다.


김모 : 나현재씨?

현재 : 아..! 조감독님 잘 지내셨죠?

김모 : 들어오세요.


현재의 인사가 민망하게 김모는 사무적으로 현재를 부르고는 오디션실로 들어간다. 현재는 서둘러 김모를 따라 들어간다.


S#7 오후 방송국 오디션실

긴장해서 뻣뻣해진 모습으로 오디션실에 들어온 현재. 사무실 테이블을 정리해서 임시로 만들어 놓은 듯한 오디션장 앞에는 테이블을 붙여 프로듀서와 작가가 심사원으로 앉아 있고, 새하얀 오디션장의 벽면과 싸늘한 심사원들의 표정이 차가운 느낌을 준다. 심사원 옆에 세워둔 카메라에 김모가 자리를 잡고 서서 녹화버튼을 누른다.


김모 : 대사 해주세요.

현재 : ...


현재가 쉽게 입을 못 열자 난감해진 김모의 표정. 현재에게 긴장하지 말라는 듯 표정으로 신호를 보내지만 너무 긴장한 현재는 이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김모 : 현재씨?

현재 : ...예.

김모 : 대사 못 외우셨어요? 대사 보시고 하셔도 돼요.


작가도 긴장에서 망설이는 현재의 모습에 짜증이 난 듯 시계를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이를 느끼고 표정이 안 좋아지며 머리를 긁는 김모.


김모 : 현재씨?

현재 :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지난달쯤에 이사 온 사람이면 잘 알죠.

그런데 같이 얘기해 본 적도 없고 몇 번 못 봤어요. 근데 그걸 왜 저한테 물어..


너무 긴장해서 대사도 제대로 못하는 현재를 보며 김모가 연기를 끊는다.


김모 : 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분 준비할게요.

피디 : 아니아니. 왜 자기가 끊어.

김모 : 아.. 연기가.

피디 : 난 좋은데? 심작가는 어때?

작가 : 응. 나도 리얼해서 좋네. 범인같애.

김모 : 아.. 죄송합니다. 현재씨. 그럼 다시 해볼게요.

피디 : 아니야. 충분히 잘 본 거 같아. (현재의 서류를 보다가) 현재씨 연기 전공은 안 하셨네요?

현재 : 네. 전공은 안 하고 연기학원에서 1년 정도 배우고 연기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가 : 아. 주로 어디 쪽 연기했어요?

현재 : 보조출연 쪽.. 주로 했고요.

작가 : 완전 연기 쪽은 아니셨구나.

현재 : ..최근에는 인터넷 채널을 열어서 단막극이나 리얼 상황극을 했습니다.

피디 : 오. 상황극. 재밌다. 그래서 연기가 리얼했구나.

현재 : 감사합니다.


피디와 작가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봐주자 그제야 긴장에서 풀리는 듯한 현재. 김모도 다행인 듯 웃으며 현재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린다.


피디 : 저희는 원래 프로그램 구성할 때 재연배우 가지고 이렇게 다 모여서 찾진 않아요. 그만큼 저희가 찾는 A씨 역할이 중요한 건데. 제가 봤을 때는 현재씨가 A씨 역할에 딱 맞을 거 같아요. 심작가는 어때?

작가 : 저도 오늘 본 사람들 중에서는 현재씨가 제일 좋은 거 같아요.

현재 : ..그럼 제가.

피디 : 네. 그런데 현재씨가 조심해주셔야 될 부분이 있어요.

현재 : 네..! 어떤..?

피디 : 저희가 주로 재연 쪽으로 연기자를 캐스팅했었는데, 이번엔 재연이 아니에요.

현재 : 그럼 드라마인가요?

작가 : 아뇨아뇨. 리얼이에요.

현재 : 리얼..요?

피디 : 저희가 이번부터 프로그램 컨셉을 더 과감하게 가려고 해요. 재연비중은 거의 없애고, 리얼 다큐쪽으로. 그런데 범인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우리가 아무나 잡고 범인인 척 할 수는 없잖아요?

현재: 범인요?

피디 : 아, 범인이라기 보다는 실제 인물이라고 해두죠. 실제 인물을 현재씨가 연기해 주시는 거에요.

현재 : ...

김모 : 어차피 모자이크랑 음성변조 다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신변 팔릴 일 없으니까.

피디 : 현재씨. 좋은 기회에요.

현재 : 아.. 저는...

작가 : 이런 기회도 쉽게 오는 기회 아니에요. 돈도 많이 벌고 스텝들이랑 안면도 트고.

현재 : ...


현재의 답변을 기다리는 심사원들. 그리고 불안한 눈빛으로 입을 열지 못하는 현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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