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강박

결국 나였나

by 오늘의 나

이혼을 결정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내가 왜
이 사람을 선택했을까,


아닌 순간들이
분명 보였는데
왜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을까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 권의 책을 마주했다.




흔히들 말한다.

“사람은 자기 부모와 닮은 사람을 만난다.”


쌀쌀맞은 엄마 밑에서 자란 남자는
쌀쌀맞은 여자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사랑을 덜 받은 사람은
사랑을 퍼붓는 이를 선택한다고.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사랑을 갈구했던 사람일수록
처음에는 지나치게 다정한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어진다고도 한다.


그런데 결혼 전,
사랑을 듬뿍 주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
냉랭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의외로 많다는 것.


프로이트는 이를
‘반복 강박(repetition compulsion)’이라 불렀다.
어릴 적 마음 깊숙이 각인된
사랑의 패턴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현상.


—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한성희




결혼 전 그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열 살이라는 나이 차가 있었기에
뭐든 다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었을까.


실제로도 그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려 했다.
데이트 비용도,
데이트 코스를 짜는 일도.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
주차장에서 몇 시간이고 기다리다
집까지 데려다주던 사람.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마음만큼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연애 속에서도
이상한 점은 분명 있었다.
나에게 솔직하게
다 말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나이 차이도 있었고,
나는 모든 것을 캐묻지 않았다.
그것이 그와 나의 관계를
지켜내는 방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는지도 모른다.


결혼 생활은
점점 건조해졌다.
함께 보내는 시간은 많았지만
따뜻한 온기는 없었다.


나에게만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항상 날이 서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문득
무릎을 탁 치게 되었다.


어쩌면
이런 사람에게
나도 모르게 끌리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리고 그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왜
이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했는지,
나조차 설명하지 못했던
그 이유를.


아빠 같이
나를 품어줄 것 같던
그의 처음 모습과 달리
그는 얼음보다도 차가운 사람이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나도 모르게 ‘반복 강박’이
작동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빠는
내가 네 살이 되던 해 돌아가셨다.


지금의 내 딸을 보며 알게 된다.
네 살의 아이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온 세상의 사랑을 받아도
모자란 존재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아빠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다.

엄마의 그늘 아래
부족함 없이 자랐고,

남부럽지 않게 잘 커왔다고 믿어왔다.


아빠의 부재가 불편하지도,
창피하지도 않았다.
내 삶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반복 강박’이라는 개념을 마주한 순간,
인생에서 가장 풀리지 않던 질문 하나가
비로소 설명되는 기분이었다.


그토록 궁금했던
그때의 나의 선택,
그 배경에 대한
하나의 단서.


사진과 영상으로만
아빠의 얼굴을 떠올리던
한 아이가
마음속으로 그려왔을
‘아빠가 있는 삶’에 대한 동경.


그 오래된 그리움이
한 어른의 선택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씁쓸했고,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나를 탓하기보다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는

내가 더 궁금해졌다.


나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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