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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화랑 Sep 15. 2016

술자리에서 브런치를 추천받다

스스로를 못난이라 생각하지 말자.

친한 오빠의 생일파티를 위해 10년 지기 친구들과 오빠들이 모였다.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거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오빠는 너희들 중에 (나를 가리키며) 얘가 제일 답답해. 하며 말문을 열었다.


난 아직도 너의 꿈이 잊히지 않아.
10년 전 너의 꿈은 라디오 작가였잖아.

물론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
재능를 가진 자가 노력을 해서 성공하고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기도 하지만
꼭 최고여야만 하고
꼭 성공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너는 너만의 감성이 있고, 그 감성을 글과 사진으로 표현해내는 재주가 있어.
그걸 잃지 않으면 좋겠어.


이 이야기..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가르쳐주셨던 선생님께서 아직까지도 내게 하시는 말씀과 똑같다..


너는 광고나 음악 쪽 일을 하면 참 좋을 텐데..
00아 절대 그 너만의 감성을 잃지 마. 절대 놓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 나이에 내 나이의 사람과 이렇게 음악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해?
많이 알아서가 아니야. 너는 음악으로 다른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야.


그럴 때마다 나는 선생님께 이렇게 말했다.


저를 과대평가하시는 거예요.
저보다 훨씬 잘 아는 사람들도 많고 잘 하는 사람도 많아요.
저는 그냥 사진과 음악을 좋아할 뿐 깊이 몰라요.
정말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예전에 제가 아니에요.
안정적인 직장에서 월급 받으면서 살고 싶어요.
먹고사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받지 않고.


그럴 때마다 답답해하시던 선생님의 모습과 오빠의 모습이 겹쳐졌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라디오 작가. 꿈.. 감히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 또는 방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꿈을 가졌고 당연히 서른이 넘었을 땐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돈 없고 빽 없고 시골에서 자란 촌년일지라도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다.


"너는 성공할 거야"
"너랑은 정말 잘 어울리는 직업이야."
"너는 너만의 색깔이 있어"

어렸을 때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수록 성공을 확신했고, 그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면 비슷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하면서, 나와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많이 잃어갔다. 똑똑하지도 감각이 뛰어나지도 않았고, 기본이 없었고 나만의 특별함은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부족함 투성이었다.


당장의 학비, 생활비도 없었고 딸 학비를 벌기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내가 고생하지 않고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는 고집과 욕심을 가지고 고시원에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과생활에 동아리, 봉사활동, 대외활동, 공연과 음악, 방송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악착같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힘을 엄한데 썼다. 어렸다. 방법을 잘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엔 어려웠고 두려웠고 소심했다. 주눅이 들었다. 핑계를 대자면 그랬다. 그리고 내 나이 27살에 어찌어찌하여 은행원이 되었다. (지금은 은행을 때려치우고 완전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브런치라고 있어. 들어가 봐. 꼭. 네가 정말 좋아할 거야.


술에 취해 흘려 들었는데, 다음날 오빠는 카톡으로 브런치 링크를 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오늘. 글을 쓰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부족하기 짝이 없는 홈페이지였지만 독학해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내 이야기를 적어나갔고 프리챌 커뮤니티, 다음 카페, 네이버 카페, 블로그 등을 만들면서 친구들과 소통했다.

부모님의 이혼, 재수, 경제적인 어려움, 백수, 아르바이트, 직장, 이직 등등.

공개적인 곳에 글을 올리면서 주변인들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위로도 받았고 무엇보다 관심을 받는게 좋았다.


싸이월드,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트위터, 페북, 인스타그램

SNS의 유행이 변해갈 때마다 각 계정에는 사진들과 글로 넘쳐났다.

다시 되돌아보면 오그라들고 우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지만 그때는 하루에도 몇 개씩 생각나는 감정들, 생각들을 쏟아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나이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나의 감정과 떠오르는 생각들을 SNS에 올리는 게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차 글과 사진이 줄어갔다.


사회 분위기가 SNS에 사진, 감정, 생각들을 자주 그리고 많이,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것을 올리는 사람들에 대해 '관종'이라는 별명을 붙이기 시작했고, 조금만 생각을 써 내려가도 오그라든다며 씹어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퍼커슨의 말을 인용하며 SNS 하는 사람들을 한심한 사람으로 몰아내는 분위기도 이어졌다.


내 이야기를 쓰면 쓸 수록 점차 '관종'이 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많은 이들에게 사생활과 생각들을 공개하고 노출하면서 일시적인 감정에 대한 글을 쓴 것뿐인데 어두운 사람, 우울한 감성이 짙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도 두려웠다.

그렇다고 혼자 일기를 쓰겠다 다짐하면서도 에이. 그냥 오늘 일은 다 잊자. 하고 넘어가 버리 일쑤였다.

자제하고, 절제하고, 말과 글을 아끼면서 생각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감성이 사라지고, 관찰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내 지인들은 아쉬워했고 안타까워했다


브런치를 추천해 준 오빠가 이렇게 말했다.

내 인스타 피드 1,700개 정도 돼.
근데 이게 나야.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친구들이 놓지 말라는 그 감성이 어떤 건지 모른다.


브런치를 통해서 오빠처럼 나 자신을 당당히 받아들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게 나라고.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느끼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맞춤법이 틀려도, 때로는 손발이 오그라 들어도, 문장력이 딸려도. 그냥 터져나오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당당히 표현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기에서 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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