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화랑 Oct 31. 2024

서른여덟에 찾은 진짜 ‘Feeling Good’

  

  요즘 내 마음속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지역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떡 만들기와 수필쓰기 수업에 참여하며 만난 나보다 10년, 20년, 혹은 그보다도 더 앞서 인생을 걸어온 선배님들. 그들과 매주 나누는 담소는 차곡차곡 쌓여 내 마음을 새롭게 물들인다. 그들의 이야기 속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자녀를 둔 엄마들의 고된 하루가, 은퇴 후에야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된 아버지들의 묵직한 목소리가, 그리고 긴 세월 가정과 아이들 곁을 지켜온 후 마침내 자신의 시간을 찾은 분들의 잔잔한 웃음이 스며 있다. 그 이야기들은 깊고 단단하게 내 안으로 스며들며, 앞으로 내가 걸어갈 길과 아이들을 어떻게 이끌어야 할지를 묵묵히 일깨워 준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며 일찍이 사회에 발을 디딘 나는 나이에 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을 좋아했고, 사교적인 성격이었기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즐거웠다. 덕분에 좋은 인연들도 있었지만, 친절함과 예의를 다해도 되돌아오는 것은 무례함과 상처일 때가 더 많았다. 20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 낯선 사람을 마주하는 일이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 나아질 줄 알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나를 긴장시키곤 했다. 회사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부담스러웠고, 결국 은행을 떠나 IT 회사로 이직하여 직업을 완전히 바꿀 정도로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는 일은 피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오랜 시간이 지나 돌아온 듯한 기분이다. 그동안 멀리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을 다시 깨달으며,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배우는 것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내 안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마치 내가 그들의 기억 속 한 페이지에 초대받은 듯,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삶에서 쌓아온 이야기들은 이제 나에게 더 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반가운 배움으로 다가와서, 이 작은 변화가 나를 환하게 비춰준다. 지금 내게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아마도 지난 몇 년간 내면이 성장했기 때문일까, 일을 그만두고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일까,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일까. 아마 모두 다 일것이다.

  이 모든 변화 속에서, 문득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새로운 새벽,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그녀의 노랫말은 지금 내 마음의 변화와도 닮아 있다. 오랫동안 가라앉아 있던 생각과 감정들이 차츰차츰 떠오르며, 나는 마치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듯 새로운 숨을 내쉬고 있다. 이제 타인의 기억과 무거운 경험들을 나누고, 그 안에서 배우는 일이 주는 즐거움을 진심으로 느끼고 있다.

  요즘 수필 수업에서는 나의 삶을 글로 풀어내어 타인과 공유하는 법을 배운다. 일기가 아닌, 독자를 염두에 둔 수필을 쓴다는 것은 매 순간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한 편의 글을 쓰면서 나는 나 자신을 조금씩 더 깊이 이해하고, 표현의 길목에서 잠시 멈춰 나를 더 투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이 누군가에게 닿아 그들의 마음속에 은은한 잔향을 남길 수 있을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Feeling Good'은 새벽의 공기가 내 폐를 가득 채우듯, 내면의 어두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게 하는 용기와 자유를 선사한다. 그녀의 노랫말은 속삭임이 아니라 힘 있는 선언처럼 다가온다.

"이제 더는 두려워하지 말고 네 삶을 온전히 느껴라."

  이 새로운 시작은 결국 나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따라 나는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길을 찾고, 나만의 목소리를 내며 삶의 물결을 타고자 한다. 지금의 나는 새벽 공기처럼 가볍고 단단하게,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으로 'Feeling Good'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