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초기에 자연 임신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리는 예상치 못한 현실에 혼란스러웠다. 특히 남편은 건강을 자부하던 사람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운동을 하루라도 쉬면 몸살이 날 정도로 튼튼했던 그였으니, 몇 달 동안은 술에 기대어 밤늦게 집에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면 언젠가 아기를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현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했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년 반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결국 우리는 난임 치료로 유명한 한방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의사는 한방 치료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하며, 시험관 시술을 병행하기를 권했다. 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으며, 남편은 한방 치료와 조금이나마 호전을 위한 수술까지 감행했지만 애석하게도 변하는 건 없었다. 결국 양방 난임센터로 향했다.
“원인 불분명으로 시험관 시술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를 원하신다면 시술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몇 번을 들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시술 실패와 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우리를 또 주저하게 했다. 그렇게 다시 2년이 흐르고, 나이는 어느덧 35세. 더는 시간을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남편을 설득해 시험관 시술을 시작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배에 직접 주사를 놓고, 아침저녁으로 항생제를 복용하면서 부작용과 싸워야 했다. 난자와 정자를 채취하고, 배아 이식을 마친 뒤 15일을 기다리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마음 한편엔 희망이 있었고, 그 희망은 기적처럼 쌍둥이 임신으로 이어졌다. 이제 모든 어려움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진정한 시작에 불과했다.
임신 초기부터 자다가도 입덧을 한다거나, 갑자기 기절해 쓰러지기도 하고, 계속되는 하혈로 입퇴원을 반복했다. 안정기에 들어선 뒤에는 조산 위험까지 발견되어 자궁경부를 묶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최선을 다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반복되는 상황이 두려웠다. 7개월 동안은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누워 지내야 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호흡곤란과 수축으로 응급실을 오가며, 끊임없이 밀려오는 조산에 대한 공포가 나를 괴롭혔다. 두 아이가 여전히 연약한 내 몸 안에 있다는 사실이 매 순간 나를 불안하게 했다.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있었지만, 나는 작은 방 안에서 매일 위기와 싸우며 아이들을 품었다. 무엇을 믿고 버텨야 할지 알 수 없던 그 시간들. 그 속에서 나름의 희망을 붙잡고 있었다.
7개월을 꽉 채워 누워만 지낸 끝에, 드디어 두 아이가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왔다. 그 순간, 그동안의 고통과 불안이 녹아내렸다. 아이들이 내 품에 안겨 잠든 그 순간 깨달았다. 이 모든 어려움은 기적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다는 것을. 쌍둥이라는 선물은 우리에게 다가온 가장 큰 축복이었고, 그 기적은 인내와 믿음의 결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