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는 조금 멀고, 평양에서는 가까운 강원도 철원. 그곳에서 보낸 나의 10대는 시골의 적막함 대신 열정과 분주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전교생이 300명 남짓한 작은 학교였지만, 그곳은 매일 새로운 막이 오르는 무대와도 같았다.
학교 임원, 밴드부, 합창부, 방송반까지. 스피커를 통해 내 목소리가 학교 구석구석 울려 퍼질 때면, 배철수 아저씨 같은 DJ라도 된 듯 가슴이 뛰었다. “나는 특별한 사람일 거야. 성공할 수 있어." 아직 닿지 않은 미래를 향해 속삭이며, 매일을 달렸다.
가정환경은 불안정했고,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모든 가능성을 믿었다. 그 믿음 하나로 대학에 가고 서울에 발을 디디면, 내 안의 가능성이 터져 나올 거라 확신했다. 스튜어디스가 되어 세계를 누비거나, 사진작가가 되어 자연을 기록하거나, 라디오 DJ가 되어 나만의 목소리로 누군가의 일상을 물들일 날을 상상했다.
하지만 대학교 오리엔테이션 첫날부터, 내 확신은 금세 조각났다.
대학 입시를 철저히 준비한 똑똑한 친구들, 문화생활을 자연스럽게 누리며 자랐거나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동생들, 부유한 가정환경을 배경으로 한 친구들, 마치 스튜어디스처럼 세련되고 예쁜 선배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강원도 철원 출신의 가난한 재수생’에 불과했다. 그들이 나보다 더 특별하다고 느끼며 스스로를 점점 더 작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숨기기 시작했다.
대학 생활 내내 아르바이트와 학원을 병행하며 열심히 살려고 애썼다. 목표를 이루겠다는 열망은 넘쳤지만 방향을 몰랐다. 많은 꿈들 사이에서 단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 채, “뭔가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강박만 나를 지배했다. 꿈은 진심이었다. 하지만 그 꿈들 속에는 세상에 잊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도 스며 있었다. 순수한 열망과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뒤섞인 채였다.
시간이 흐르며 꿈을 하나씩 접어갔다. 직장을 얻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길을 따라 걸었다. 변화하는 트렌드를 쫓으며 일을 배웠고, 퇴근 후에는 공부와 취미를 놓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었을 때는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쌍둥이를 돌보고 집밥을 만들고, 떡과 수필 쓰기를 배우고, 독서와 공부, 블로그까지.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방 싱크대 앞에 서 있다 문득 멈췄다.
“이 모든 애씀은 누구를 위한 걸까?”
그 애씀은 단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스스로에게 “이만큼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것, 무엇이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는 다르게 살기로 했다.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머무는 공간을 정리하며,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돌보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꿈을 꾸는 건 여전히 멋진 일이지만, 꿈이 반드시 거창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를 아끼는 삶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작은 것들에서 행복을 찾는다. 깨끗이 정돈된 공간에서 시작하는 하루, 따뜻한 차 한 잔이 주는 위로, 조용히 산책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삶의 균형을 다시 잡아주고 있다.
성공이라는 신기루를 쫓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진정 원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삶. 지금 그리고 앞으로, 내게 필요한 건 더 이상 외적인 성공이 아니라 마음속 평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