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2살에서 38살까지 여섯 곳의 회사를 다녔다. 회사를 계속해서 옮긴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매너 있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어서.
22살, 학교를 휴학하고 한 입시학원에서 인포메이션 데스크 업무를 맡았다. 비록 정식 회사라기보다는 학원이었지만, 아르바이트를 제외하고 내 첫 사회생활이었다. 그곳에는 60대 할아버지 원장님과 40대 중반의 과학 선생님, 남자 두 명이 전부였다.
첫 직장부터 만난 이 사회의 벽은 참으로 높고 단단했다. 그는 전화벨이 두 번 이상 울리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만약 전화벨이 두 번 이상 울리면, 원장실 문이 벌컥 열리며 왜 전화를 안 받느냐며 혼을 냈다. 혼나기가 싫었던 나는 화장실에 갈 때도 문을 열어둔 채 소변을 봤다. 언제 전화가 올지 몰라서.
뭐든 잘못되면 내 탓이었다.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멍청한 놈. 머리는 왜 들고 다니냐? 생각 좀 하고 살아."
그 말들이 무뎌지지 않고 상처로 남았다. 긴장은 죽을 때나 늦추는 거라며 항상 긴장하고 살라고 했다. 매일이 살얼음판 같았다. 그때 썼던 일기장을 다시 보니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제발 혼내지 말아주세요 ㅠ.ㅠ'
못 마시는 소주를 사서 자취방에 앉아 홀짝홀짝 마시며 속을 달래기도 했다. 결국 그곳에서 3년을 버틴 끝에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그만두었다. 말로 퇴사를 전하는 것도 어려웠던 소심한 나였다.
다음 회사에선 남자들만 있는 환경에서 막내 여자 인턴으로 시작했다. 나의 사수는 회사 내에서 인정받는 직원이었다. 워크숍에서 MC를 자처하고, 임원들 앞에서 의전도 잘하며 위트 넘치고 일까지 잘했다. 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을 잘 따라가면 나도 성장할 수 있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 나는 자꾸만 삐걱댔다. 그 4개월간의 인턴 기간은 내 기억에서 통째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무슨 일 때문에 갈등이 있었는지조차 떠올리기 싫다. 다만 하나 또렷하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매점 아주머니가 나를 예뻐하셔서 갈 때마다 작은 선물을 주셨다. 마스크팩, 밴드, 이런저런 작은 것들. 어느 날, 사수가 그걸 보더니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야, 마스크팩 준 건 네 얼굴 관리 좀 하라고 준 거고, 뭘 준 거든 네가 불쌍해서 준 거야."
그 말이 날 얼마나 상처 줬는지 그는 몰랐겠지.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원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 사수도 내가 회사를 떠난 후 몇 년 동안 먼저 연락을 해왔다. 안부 인사를 묻는 문자였다. 하지만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졸업 후 첫 정규직으로 합격한 곳은 농협이었다. 계속되는 IT 회사 취업 실패에 농협 공채 시험을 봤고, 한 번에 합격했다. 첫 출근을 앞두고 나는 기대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보자고. 하지만 내가 발령받은 곳은 농협 지점이 아닌 미곡처리장 총무실이었다. 동기 중에서 나만 벼를 가공해 쌀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발령을 낸 것이다. 30명의 남자 직원들 사이에서 내가 유일한 여직원이었다. 첫 출근 날부터 들었던 말은 이랬다.
"일 잘할 필요 없고, 커피만 잘 타주고 인사 잘하면 돼."
그 말이 곧 이곳에서 나에게 기대하는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직장 내 상사들의 거친 말투뿐 아니라 손님들조차 나를 하대했다.
"야, 이거 빨리 처리해 줘." "내꺼 왜 안 줘 씨발."
일하는 내내 나는 스스로를 의심했다. 내가 문제일까? 남자들만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내 성격 탓일까? 하지만 잘못했다 한들, 아직 사회 초년생이 무엇을 얼마나 잘할 수 있었을까.
연말에는 상무이사께 다음해에는 꼭 지점으로 발령을 내달라고 부탁했다. 지점으로 가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그러나 지점에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차장이 규정을 어기며 인수인계 없이 나를 투입했고, 설날을 앞두고 본인의 시재에 문제가 생기자 내게 책임을 물었다.
"네가 잘못 준 거 아니야?"
CCTV를 돌려봐도 내가 잘못한 증거는 없었지만, 새벽까지 취조당하던 그 밤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생각했다.
'이 일을 더 버티면 내가 정신이 나가거나 죽겠구나.'
결국 1년 반 만에 농협을 떠났다.
앞으로는 상식적이고 매너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일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농협에서 나와 이직이 쉽지 않았지만, 근무환경이 좋고, 조직문화가 수평적인 회사만 지원했다. 좋은 회사에 이직해 5년을 버텼고, 그다음 회사로는 IPO 선언 기업 중 일하기 좋은 회사 1위에 선정된 곳에 이직해 매너 있는 사람들과 일을 일궈나갔다.
하지만 나 스스로의 두려움과 긴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가 바뀌고 사람은 달라져도 내가 상처받았던 기억들은 여전히 내 마음을 지배했다. 사람들과 일하는 게 두려웠고, 혹시나 상사에게 나쁜 소리를 듣지 않을까 매일 불안해하며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눈치 보는 행동이 계속됐다. 조금이라도 실수할까 불안해하며 실수하지 않으려 애썼다.
나는 이 모든 경험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강해진 게 아니라 더 두꺼운 방어막을 두른 채 살아온 것뿐이었다. 주변에서 나를 칭찬할 때조차 그 말이 진심인지 의심했고, 칭찬 뒤에 비난이 따라올까 봐 늘 조바심을 냈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좋은 성과를 내려고 애썼지만,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건 성과가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두려움에 갇힌 마음을 풀어내고, 스스로를 지지하고 격려할 때 비로소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앞으로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면, 그들에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수고했어.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긴장과 불안을 풀어주고, 그들이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걸 이제는 믿는다. 특히 사회 초년생 시절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가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고 있을 때 그 말이 작은 힘이 되리라 믿는다. 내가 듣지 못했던 말이지만, 이제는 내가 누군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