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상당한 빚이 있다. 값으로 매길 수도 없는, 헤아릴 수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빚.
나는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할 때, 그들은 단순히 나를 도와준 사람들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한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엄마는 식모살이, 서빙, 마트, 닭장, 농장, 식당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이 혼자서 세 남매를 대학교까지 보내셨다. 고향에서는 우리 아빠에게는 등을 져도 엄마에게 등을 진 사람은 없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너는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 나는 절대 너희 엄마처럼 못한다. 너희 엄마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너희 엄마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 없다. 너희 엄마처럼 자식만을 위해 희생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붙도록 들었다. 엄마라는 단어를 꺼내면 내 감정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릴 것 같아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엄마. 가장 큰 마음의 빚을 진 것은 엄마다.
엄마는 내게 "잘만 살면 된다."고 항상 말씀하시니 엄마에게 진 빚은 잘사는 것으로 내 마음의 빚이 덜어진다면 다행이지만, 엄마를 이은 수많은 사람들은 어쩌할까.
스무 살, 캐리어 하나만 들고 고향을 떠나 고시원에 안착했다. 좁디좁은 방에 몸을 구겨 넣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된 삼각김밥과 쥬시쿨로 허기를 달랬다. 저녁은 아르바이트하던 일식집에서 제공해 주시는 밥으로 때웠다. 매일 저녁 제공되던 밥 한 끼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
고시원의 방은 몇 평 남짓했다. 창문은 없었고, 천장에는 쇠막대 봉이 하나 가로질러 있었다. 빨래를 걸라고 만들어놓은 봉. ‘이걸로 끝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방 안에서 내 인생도 그만큼 좁아 보였다. 돈도 없고, 대학은 가고 싶고, 이상은 너무 높은데 현실은 바닥에 깔린 먼지처럼 시궁창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랐다. 몇 년째 묶여 있다 풀려난 개처럼, 들판을 나뒹굴며 방향도 없이 헤매던 그때, 따뜻한 밥을 사주고, 응원해 주고, 챙겨주던 사람이 있었다.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그대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시골에서는 "소영이가 서울 가서 공부는 안 하고 남자 만나고 연애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일로 엄마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버렸다. 나는 또 한 번 엄마에게 마음의 빚을 안기고 말았다.
재수 끝에 어렵게 대학에 입학했지만, 꿈을 품었던 고시원 시절보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목표를 잃었고, 방향도 잃었고, 존재 이유조차 잃어갔다. 툭하면 지각, 결석. 툭하면 잠수, 카톡 탈퇴, 연락 두절. 지지리 궁상처럼 사는 재수생을 양지로 끌어올린 건 13명의 대학 동기였다. 이 놀랍도록 많은 인원의 각자가 내게 얼마나 큰 따뜻함을 안겨주었던지.
그들은 내가 계속 살도록 격려했고, 멱살을 잡고 햇빛을 보게 만들었다. 학술 답사를 가더라도 돈이 부족하면 보태주거나 깎아주거나, 함께 밥을 먹어도 밥값을 받지 않았고, 아프면 병원까지 가게끔 했다. 살 곳이 없으면 자신의 자취방을 내어주고, 이사할 때 짐 하나라도 나눠 들었으며, 따뜻하고 비싼 패딩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받은 걸 모두 다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나는 그들에게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받았고, 그 덕분에 살아남았다.
졸업을 앞두고 연이은 취업 실패에 졸업 유예는 신청했지만, 재학생이 아니기에 기숙사에서도 나가야 했고 따로 방을 구할 형편도 되지 않았다. 그때, 기숙사 사감님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조건은 조교를 하며 중국인 유학생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머물 곳을 잃지 않았다.
나를 살린 사람들이 이들뿐이랴.
어려운 가정 형편에 애쓴다며 내가 잘되기만을 아직도 기도해 주신다거나, 지금도 나의 체중을 걱정하시는 고등학교 때 은사님도 여러 명 계신다. 그들은 나를 살리는 또 다른 손길이었다.
10대와 20대, 나는 누군가 덕분에 살아남았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를 붙잡아 준 사람들이 있었다.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 의지로 살아가게 되었다.
하와이 출신 심리학자 에밀리 베니언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외로운 환경에서도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 한 사람이 많았다. 나를 살게 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나를 걱정해 주고,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덕분에 나는 지금 이곳에 있다.
아무리 작은 선의를 베풀어도, 아무리 감사를 전해도, 받은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내가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있을까? 그들이 내게 해 준 것만큼, 나도 해줄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쩌면, 이 빚을 갚는 일은 정해진 방식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갚을 수 있을 만큼 정확히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준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베풀어야 하는 것인지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확신이 없다. 빚을 진 사람들에게 직접 돌려주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받은 온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것이 맞을까. 나는 그 답을 찾지 못한 채, 여전히 길을 잃고 헤맨다.
누군가는 나처럼 많은 손길을 받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움의 크기가 삶의 의미를 결정짓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받은 것이 크든 작든, 결국 살아남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우리는 스스로 길을 걸어가게 된다. 받은 것이 없어도, 스스로 살아낸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이 빚을 갚는 방법을 찾고 싶다. 받은 사랑이든, 스스로 일어선 의지든, 그것이 누군가에게 다시 이어질 수 있도록.
나는 더 이상 생을 놓아버리려 했던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스스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내 의지로, 내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언젠가, 정말로 이 빚을 갚을 방법을 찾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갚을 것이다. 빚을 졌다는 마음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그 마음을 온전히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그때까지, 나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