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록스타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흔한 록스타가 아니라, 무대 위에 서서 단 한 번의 눈빛과 제스처만으로 수천 명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세상을 뒤흔드는 '우주 大 ROCK STAR'말이다. 가죽 재킷을 걸치고 망사스타킹에 짧은 치마를 입은 채, 단호하게 잘린 커트 머리와 선명한 아이라인, 새빨간 립스틱으로 빛나는 얼굴을 상상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번쩍이는 화려한 장신구를 매달고, 마이크를 움켜쥐고 절규하듯 노래를 부르면 관객들은 열광할 것이다. 나는 그 광기를 전율로 받아내며, 세상을 흔드는 여전사가 되어 있을 터였다.
세련된 외모에 섬세한 목소리로 세상의 균열을 노래하는 자우림의 김윤아처럼, 창백한 피부와 가느다란 몸에 아련한 울림을 품은 일본 가수 나카시마 미카처럼, 나는 퇴폐적이고 강렬하며 세상과 맞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음악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감정을 흔들며, 목소리 하나로 공간의 온도를 바꿀 수 있는 존재를 꿈꿨다.
그러나 아무리 망토를 두르고 뛰어올라도, 슈퍼 히어로처럼 하늘을 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주대락스타는 꿈은 어린 시절 품었던 순진한 동경이자 비현실적인 상상이었다. 입술을 붉게 바르고 노래를 외쳐도, 결국 내가 그 무대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어쩌면 꿈꾸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음악을 사랑했다. 잘하진 못했지만, 누구보다 뜨겁게, 누구보다 진심으로 음악을 품고 있었다. 가난과 불안이 일상이었던 어린 시절, 방 안에 틀어박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세상의 소음을 지우며 살았다. 카세트테이프 하나 살 여유가 없던 시절, 학교에서 빌린 CD를 공테이프에 덮어씌워 닳도록 들었다. 음악은 나에게 숨 쉴 구멍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방송반 활동을 했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직접 고른 곡을 틀고 음악을 소개하며, 클래식부터 팝, 재즈, 록, 뉴에이지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탐닉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에는 친구들과 여성 밴드부를 결성해 기타리스트로 학교 축제 무대에 올랐다. 낡은 앰프, 떨리는 손끝, 그리고 관객의 박수. 삐쩍 마른 몸으로 무거운 기타를 쥐고 서툰 손짓으로 연주하던 내 모습으로 '로보트'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날만큼은 진심으로 록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늘 내 상상보다 무거웠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집은 더 이상 나를 학교에 보낼 여유가 없었다. 나는 합격한 대학을 포기하고,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캄캄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부모에 대한 서운함, 스스로에 대한 혐오 같은 것들이 내 마음을 짓눌렀다. 그 무렵, 처음으로 내게 빛처럼 다가온 뮤지션이 있었다. 바로 콜드플레이*였다.
(*콜드플레이는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등장한 감성 록 밴드로, 차분한 멜로디와 진심 어린 가사로 전 세계 청춘들의 마음을 어루만졌고, Yellow, Fix You, The Scientist 같은 노래들은 시대를 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매일 밤, 편의점 스피커를 통해 콜드플레이의 음악을 들었다. 나는 격렬한 분노로 불타오르는 대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 더 견뎌보자는 마음을 키워갔다. 특히 2005년 발매된 Fix You라는 곡은 나를 지탱해 주는 작은 등불이었다.
"When you try your best but you don't succeed, When you get what you want but not what you need..."
(최선을 다해도 성공하지 못할 때,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필요한 것을 얻지 못했을 때.)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nes. And I will try to fix you."
(빛이 너를 집으로 인도할 거야, 너의 꺼져가는 몸에 다시 불을 지필 거야, 나는 너를 고쳐주려고 노력할 거야.)
그들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세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고 싶어졌다. 누군가, 어딘가에, 아직 나를 위한 빛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2017년, 콜드플레이가 처음 한국에 내한했다. 오랜 시간 내 안에서 조용히 숨 쉬며 나를 붙잡아주던 밴드였다. 그들이 마침내 한국 땅을 밟는다는 소식은, 긴 겨울을 견디다 맞이한 봄날의 햇살처럼 설레고 벅찼다. 나는 혼자 공연장으로 향했다. 입장 대기 줄에 서는 일도,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시간도 어딘가 쓸쓸했지만, 그 쓸쓸함마저 감내할 만큼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이었다. 조명이 꺼지고, 무대에 전주가 울려 퍼질 때, 나는 오랫동안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단번에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서정적인 기타 리프가 울리고, 무대 위로 황금빛 조명이 쏟아지던 순간, 나는 단지 그곳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울고 있었다. 그들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어린 날부터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끌고 온 내 마음이 대견해서. 공연이 끝난 뒤에도 심장은 한참 동안 고동쳤다. 몸 어딘가에는 여전히 노래가 남아 울렸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2025년 봄, 콜드플레이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다시는 손에 쥘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유를 얻게 된 하루였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떠났고, 나는 홀로 남겨졌다. 공연장으로 향하는 길은 이전과 달랐다. 청춘의 불안이나 외로움이 아니라,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잊고 살았던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오래도록 껍질 속에 감추어두었던 나를 꺼내는 시간 같았다. 무대 위에서 쏟아지는 빛과 소리가 차가운 공기와 섞여 몸을 흔들 때, 옆자리에 앉은 스물여덟 살의 여성을 만났다. 공연이 끝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고, 셔틀 버스를 타러 돌아가는 길 내내 서로 좋아하는 밴드와 다녀온 공연, 놓쳐버린 무대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순간의 인연이었지만, 나이 차이가 무색하게 좋아하는 취향으로 마음이 이어져, 인스타그램 계정을 주고받으며 기회가 된다면 다음 공연은 함께 가자고 약속했다.
공연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핸드폰을 꺼내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낯선 사람에게 내 계정을 공유했다는 사실이 문득 이상하게 낯설었다. 어딘가 내 방 서랍 깊숙한 곳을 불쑥 열어 보여준 것 같은, 조심스럽고 은밀한 기분이었다. 혹시 너무 감정적인 글은 없었을까, 어린 날의 부끄러운 흔적이 남아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피드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훑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는 멈춰버렸다. 피드 속에는 내가 걸어온 시간과 음악을 즐기고 느낀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첫 공연의 티켓 인증사진, 눈 내리던 날 적어둔 노랫말 한 줄,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에게 사인을 받고 감격했던 순간, 2017년 콜드플레이 공연장에서 행복해하는 내 모습까지. 어린 날의 꿈이 한 겹 한 겹 쌓여 만들어진, 나의 삶 자체였다.
나는 왜 그토록 우주대락스타가 되고 싶었던 걸까. 모두의 환호를 갈구해서였던 것도, 외로움을 감추고 싶어서였던 것도 아니었다. 나는 자유를 갈망했다. 단 한 사람의 허락도 필요 없이, 세상의 한가운데서 주먹을 쥐고 외치고 싶었다.
로커들이 그러했듯, 부조리한 세상을 향해 내 목소리를 던지고 싶었다. 억압을 비웃고, 어둠을 가르며, 누구도 나를 길들일 수 없는 거친 불꽃이 되고 싶었다. 내 목소리가 울릴 때마다 나를 짓눌렀던 두려움과 서러움이 산산이 부서지기를 바랐다. 내가, 그리고 나처럼 작고 불안했던 누군가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끝내 우주를 휘어잡는 록스타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 꿈을 품었던 어린 내가 오늘의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작지만 진짜였던 나만의 소리를 껴안고 살아왔다. 나는 여전히 자유를 꿈꾼다. 거친 깃발처럼 나부끼더라도,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작은 노래를 안고, 세상 속을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