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긴 대화

by 채수아

내 남편은 매우 착하고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난 중년에 울화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어제는 남편과 길고 긴 대화를 나누었다




나 : 여보, 내 얘기 좀 들어줘.


남편. : 하고 싶은 말 다 해봐.


나 : 여보, 알지? 내가 어머님한테나 아주버님, 형님, 고모한테나, 조카들에게까지 진심이었다는 거.


남편 : 당연히 알지.


나 : 내가 어머님께 왜 잘해드리려고 애썼는지, 힘들어도 모시고 살려고 애썼는지 알아? 어머님의 한 많은 삶이 가여워서야, 어머니 고생 많으신 삶을 아니까, 측은지심으로 그게 되더라고.


남편 : 잘 알지.


나 : 그런데 왜 당신은 나를 돌보지 않고 살았어? 순진하고 해맑고 늘 명랑하고 건강했던 내가, 결혼 후 마음고생이 심해 비쩍 마르고, 자주 아프고 사는데, 왜 맨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살았지? 난 당신의 사랑과 위로가 필요했는데,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당신 하나 보고 결혼한 나를 그렇게 오랫동안 방치하고 살 수가 있었어?


남편과 사귀던 때
결혼 2년 차



남편 : 내가 백 번 천 번 잘못했어. 철이 없고 어리석어서 그랬어. 직장생활을 그렇게 하는 줄 알았어.


나 : 몸도 안 좋은데, 학교 출근하는 내가, 당신이 늦게 들어오면 겨우 서너 시간 자고 출근을 했어. 당신은 어쩜 그렇게 나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


남편 : (머리를 푹 숙이고 말이 없다)


나 : 나는 가난에 한 맺힌 당신이 안쓰러워 많이 배려하고 살았잖아. 어머니 죽어도 못 모신다는 형님 대신 결혼하면서부터 어머니 모시고 살았잖아. 착한 마음으로 살아보겠다는 나를 왜 고마워하고 더 배려하지 않고 살았지? 난 이해가 안 돼. 당신이 좀 못되고 나쁜 사람이면 포기가 되었을 거야. 밖에 나가면 100점인 사람이 왜 나한테는 그러고 살았는지... 어머님 모실 사람이 필요했어? 직장 탄탄하고 돈 잘 벌 사람이 필요했어? 난 당신에게 이용당한 기분이 들어.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그래서 폭발하면 당신을 괴롭히는 거라고.


남편 :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내가 너무나 어리석었어


나 : 난 결혼 이후 너무 힘들었어. 세상 물정 모르고 하하 호호 살던 내가, 상처투성이가 되어 고통스러웠다고.




남편이 한숨을 쉰다. 남편은 좋은 면이 많은 사람이었다. 우리 부모님께도 잘해드렸고, 내 형제들에게도 진심으로 대했다. 친정에 가서 가전제품 상태가 안 좋으면, 남편이 바로 새것으로 장만해 드렸다. 내가 친정에 가서 변기 커버를 바꿔드리고, 행주를 새것으로 사다 놓고, 냉장고 청소를 하고 오는 것처럼, 이 남자도 늘 최선을 다했다


이 남자는 왜 그랬을까? 가난이 싫고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한이 많아(아버님이 장애가 있으셔서 시골에서 요양생활을 하셔서 아버지 없이 자랐다) 중학생 때, 결심을 했다고 한다. 돈 없고 배경도 없는 자기가 할 일은, 오로지 공부를 잘하는 것 하나뿐이라고. 남편은 코피를 흘려가며 공부를 해서 전교 1등까지 했고,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장학생으로 다닌 사람이었다. 졸업 후 대기업 직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나를 만나 결혼을 했다. 중학생이었던 그 아이가 하나 더 결심했던 것은,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이었다. 하지만 내 남편은, 직장생활과 사회생활을 잘하고 싶은 인정 욕구가 너무 높아, 나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했다. 시집살이에 지친 나는, 자주 한숨을 쉬고 자주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대기업 이후 공기업으로 직장을 옮긴 후에는 퇴근 시간도 빨라졌고, 술 마시는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리고 내가 17년 시집살이 이후 몸이 망가져 학교를 퇴직하고 어머님과 분가한 이후에는, 집안일을 많이 도와주는 남자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은 늘 그래 왔듯이 정년퇴임 후에도 새 직장에서 충실히 일을 하고 있고, 내게도 최선을 다해 배려하고 산다. 그리고 두 시간 거리임에도 주말부부 대신 출퇴근을 하고 있다. 덕분에 내 울화병은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새로운 신혼을 보내는 것처럼 나의 행복지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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