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마음도 체한다」라는 책 제목이 나를 이끌어서 책을 주문했다. 그 제목을 보니 떠오르는 일이 있다.
나는 찬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 따뜻하게 데운 우유는 소화를 시킬 수 있지만, 찬 우유를 마시면 배가 금방 사르르 아프고 심하면 설사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특이한 체질인가 했는데, 언젠가 한 의사가 TV에 나와서 한국에는 그런 체질이 많다는 걸 알았고, 어떤 한의사는 우유를 권하고 싶지 않은 음료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어쨌든 영양 좋다는, 보통은 시원하게 쭈욱 마시는 그 우유를 난 마실 수가 없어서, 학교 급식으로 나오는 내 흰 우유를 우리 반의 우유 좋아하는 아이들이 대신 마시곤 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점심 급식과 아침 우유를 한 세트로 해서 급식비를 제하던 때였다.
나는 교사로 근무하며 장례식에 참석을 많이 했는데, 가장 가슴이 아팠던, 기억에 오래 남는 장례식이 하나 있다. 30대 중반의 똑똑하고, 인물 좋고, 훌륭한 교사였던 한 여교사의 황망한 죽음이었다. 아침에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간 그 선생님은,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는데, 병명은 급성백혈병이었다. 얼굴빛이 점점 검은빛을 띠었고, 내게 말을 할 수가없어서 노트에 고맙다는 글자를 비뚤거리며 썼던 그녀의 모습이 20여 년이 지났어도 생생히 떠오른다. 워낙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어서 나는 거의 매일 중환자실에 들러 그녀를 만났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녀는 먼 길을 떠나고 말았다. 가족들과 많은 교사들과 함께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던 그 장소에서, 그녀의 남편은 계속 한숨을 쉬며 담배를 피웠다.
나도 친구를 잃은 슬픔이 컸지만, 그녀의 어머님을 위로하기 위해 가끔 전화를 드리고, 명절에 가끔 찾아뵙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녀의 어머님이 내 손을 잡으시며 한 맺힌 이야기를 해주셨다. 딸과 사위의 불화가 매우 극심했었는데, 아마도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떠난 것 같다고. 그 말을 들으니, 눈물 대신에 계속 굳은 얼굴로 담배를 자주 피우던 그녀의 남편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던 그녀의 아이들이 지금은 20대 후반이 되었겠지.
나 또한 건강했던 몸이 시집살이를 시작한 이후 급격히 나빠졌다. '도리와 감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몸과 마음이 계속 상해 가고 있던 것이다. 훗날 온화하게 변하신 어머님의 모습이 처음부터 그랬다면, 또는 나이 들수록 마음 그릇이 커진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의 나였더라면, 그랬다면 중간에 분가 없이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잘 살았을까? 어찌어찌 이겨내고 살아내어 어머님과 사랑 다운 사랑을 나누다 어머님을 떠나보내드려 감사하지만, 내 고통스러운 긴 세월은 나의 감정 소화력을 완전히 무시한시간들이었다.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음식을 먹어야 하고,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야 할 것 같다. 그래야 탈이 나지 않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꼭 필요했던 '거리 두기'가 우리 인간사에도 적당히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가슴을 스치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