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그랬다면

by 채수아

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씁니다. 제가 마음 아팠던 이야기를 쓰고, 제가 상처를 극복했던 이야기를 쓰고, 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이야기를 씁니다. 제가 그동안 써온 글은 천 편 가까이 되고, 그동안 적어놓은 글감 제목이 500개 정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매일 영감처럼 스쳐가는 새로운 글감 제목이 보통 3~4개 정도 됩니다. 잠시 한눈을 팔면 금방 사라지기 때문에 저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제목을 바로 입력해 두곤 하지요.


이 글감은 사흘 전에 저를 스쳐갔습니다. 생각에 잠기더군요. 만일 그랬다면, 전 아마도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만일 나의 시어머님이 오랫동안 모시고 사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만일 우리 형님이 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마음이 있었다면


만일 나의 남편이 '어머니 안 모시면 이혼할 거야'라는 말을 안 했다면


만일 내가 친구의 동서처럼 '개가 짖나 보다'라며 시어머니 잔소리와 악담을 흘려버렸다면


만일 어머님께 받은 상처가 그대로 남아 내 안에 미움이 남아있었다면


그런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만일 이 중에서 하나라도 그리되었다면, 저는 탈출구를 찾아서 마음의 고통이 그리 깊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머님이 17년 합가 이후 저를 지극한 사랑으로 보듬지 않으셨다면, 아마 저는 글을 쓰지 못했을 겁니다. '미움과 분노와 한' 그 소재로만 글을 뿜어낸다면 그게 과연 글로서 가치가 있을까요?


만일, 만일, 만일...


제 삶의 대부분을 아는 친구가 그러더군요.


"난 이런 생각을 해봤어. 니가 이런 글을 쓰기 위해 니 삶이 그랬던 건 아닐까?"


그런 역발상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아주 조금은 수긍이 가더군요. 친구는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난 니 글을 읽으면 마음이 아파. 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다 알아서 더 그럴 거야. 때로는 눈물이 흐르기도 해. 그런데 이상한 건 아픔이 묻어있는 그 글을 읽고 내가 다짐을 하게 되더라고. 학생들을 더 많이 사랑해야지. 내 고통을 용기 있게 이겨내 보자. 살아있어 감사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이러더라고. 난 니 글이 참 좋아. 그리고 고마워. 그리고 잘 이겨낸 니가, 고통을 겪고도 아직 밝고 고운 니가 인생 승리자라고 생각해."


전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이렇게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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