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근만근인 상태로 일어날 때가 가끔 있다. 새벽형이라 일찍 잠드는 습관이 있는데, 서울에서 저녁 식사 후 담소를 나누다 수원에 내려오면, 내 몸은 취침시간이 지났기에 매우 힘들어한다. 그러니 다음날 비정상의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오십 년 지기 모임이 좀 늦게 끝나니 몸이 신호를 보냈다. 서울에서 교장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방학이어서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고,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점심 식삿값을 내가 지불했는데, 평소와 달리 저녁을 먹고 가자고 교장 친구가 조르는 통에 모두 오케이를 했다. 친구가 사준 코다리찜과 누룽지 백숙의 조화는 기막히게 훌륭했다. 갑작스러운 저녁 식사로 인해 남편들에게 연락을 하는데, 미리 예견한 내 남편은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미리 알려만 달라고 했다. 자기는 퇴근길에 휴게소에서 사 먹고 올 거라고. 순간 남편의 착한 마음이 마음에 다가와 고마웠다. 친구들과의 아쉬운 헤어짐에 서로를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아홉 살에 한 반 친구로 만난 우리가, 이렇게 평생의 친구로 살 줄 몰랐다. 내 삶을 더 많이 행복하게 해 준 나의 벗 들이다.
친구의 삶을 다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것에 열정을 느끼고 사는지는 잘 안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 중에 까르르 웃기도 하지만, 눈이 빨개지게 울기도 한다. 모두 애썼다. 아내 노릇하느라, 엄마 노릇하느라, 며느리 노릇에 딸 노릇 하느라. 한 친구는 두 아이의 할머니가 되어 손주 바보가 되어 살아간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우리가 만난 세월이 반백 년이 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내 삶에 후회와 아쉬움이 있듯이 친구들 또한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안다. 실수와 시행착오가 있었어도, 우리는 선한 마음으로 했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대견하고, 가끔 마음이 아프고, 늘 고맙고, 오래 함께하고 싶어 한다. 교장 친구가 전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네 사람도 언젠가 하나 둘 떠날 때가 올 거야."라는 말에 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사랑했던 삶의 멘토이신 아버지도 하늘나라로 떠나셨는데, 이 친구들도 언젠가는 떠나겠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각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다고 말하는 철학자도 있고, 전생에 풀지 못한 숙제를 풀기 위해 태어나는 거라는 말하는 분도 있다. 나는 우리 모두 사랑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을 거라고 말하고 싶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