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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Aug 14. 2023

아버지의 탁월한 선택

아버지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셨고, 중등 수학교사 자격증이 있는 분이셨다. 오랫동안 발령이 정체되던 그 시기에 '5년 동안의 초등 교사 생활' 이후 중등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그런 방법을 선택하셨다. 발령이 나지 않아 걱정이 크셨던 장모님과 시골 시댁에 살고 있던 아내와 아기를 생각했을 거라는 생각이 요즘에 와서 든다. 아버지는 5년 동안이 아니라 평생 초등에 계셨다. 보람이 더 클 것 같다고 초등에 머무신 것이다. 그 당시 아버지의 친구들은 모두 중등으로 옮겨 가셨다.


그런 아버지의 학벌에 어울리지 않게, 엄마는 초등학교만 졸업한 분이셨다. 바로 위 오빠가 중학교 입학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을 하자, 가정 형편이 여유로웠음에도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중학교에 못 가게 하셨다. 공부를 잘했기에 담임 선생님께서 외할아버지를 설득하러 집에 찾아오셨지만, 외할아버지는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의 부모님 학벌은 대졸과 졸이었다. 초등학교 때 '가정환경 조사'를 한다고 손을 들을 때 보니까, 아버지 대졸도 드물었고, 엄마 졸도 드물었다. 나는 내 손이 부끄럽다 생각했었는지, 그다음 해에는 내 손이 엄마를 '중졸'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죄스러웠던지, 오랫동안 마음에 걸려 있었다.


엄마는 내게 미소를 지으며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서울에 많이 배운 멋있는 여자들도 많을 텐데, 나와 결혼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아버지의 학벌이 엄마의 한을 어느 정도는 녹여준 것 같았다. 시골 부모님이 정해 주신, 키 162(아버지는 164)에 일곱 살 적은 아가씨를 딱 한 번 보고 결혼을 결심한 우리 아버지! 사 남매의 키가 평균 키보다 다 작아 속상하셨겠지만, 어쨌든 아버지의 아내 선택은 탁월하셨다.


엄마는 화를 잘 내지 않으셨다. 엄마는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으셨고, 남의 험담을 즐겨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늘 부지런하셨고, 집에 찾아온 아버지의 제자들을 당신의 제자처럼 사랑하셨다. 엄마는 시골에서 올라온 시댁 조카들을 당신 조카들에게 하듯 잘해 주셨다. 그리고 엄마는, 중풍으로 3년 넘게 누워계셨던 아버지를 극진히 간호하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혀가 굳어 말씀을 못하셨는데, 어느 날인가 엄마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고 한다. 아마도 고마웠다는 손인사였을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평생을 참 열심히 사셨다. 아버지의 탁월한 아내 선택 덕분에 남아있는 우리 가족은 지금까지도 잘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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