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때때로 예민하다. 후각이 제일 예민하여 나쁜 냄새를 맡으면, 심한 경우엔 두통약을 먹을 때도 있다. 그리고 '글'에 예민하여, 글을 졸졸 흐르지 않게 만드는 단어가 있으면 콕콕 집어내어 저리로 버린다. 학교에 있을 때 오랫동안 신문을 만들던 나의 습관이다. 또 하나는 '미안함'에 대한 나의 예민함이다. '나로 인해 상대방이 속상하면 안 된다'는 약간의 결벽증 같은 면이 있다. 그건 '남을 배려해라. 조금 손해 보면서 살아라. 이기적인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씀을 우리 사 남매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아버지 영향이다.
교사가 된 내가 첫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이어 한 달 후 개학이 될 때쯤에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 아이들이 한 달 동안 열심히 방학 숙제를 해 오는 건데, 그걸 알아줘야 하는 게 교사다. 특히 일기 검사는 며칠에 걸려서라도 다 읽어 봐라. 그러면 아이들의 한 달을 알게 되고, 아이들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도장만 꽝꽝 찍어서 다시 나눠주는 걸 애들은 다 안다."
발령 후 처음부터 일기 검사를 열심히 해 오던 내게 아버지 말씀은 특별한 게 아니었다. 아이들의 일기장에 '맞춤법 교정'은 아주 가끔이었고, 그곳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비밀노트' 비슷한 공간이 되었다. 난 일기장을 작문 노트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이가 마흔이 넘은 여자 제자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의 댓글이 달린 그 일기장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가끔 보면서 선생님을 그리워했다고.
sns를 하면서도 내 오랜 습관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내 포스팅에 달리는 댓글에 답글을 쓰지 않은 적이 없다. 댓글이 많이 달리는 분들이 내 댓글에 '좋아요'만 눌러주어도 고마운데, 난 다 이해하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작년 내 생일 축하하는 많은 댓글에도 일일이 답글을 달았다.
고.마.움.
감.사.함.
나의 예민함이 때론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난 나의 예민함이 싫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