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근무할 때 반 아이들 별명을 잘 지어주곤 했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남자아이 별명은 '참배'였다. 그 아이 이름은 창복이였는데, 왜 별명이 참배가 되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수업 시간에 손 든 아이를 시킬 때에도 별명을 불렀다.
"오서방, 나와서 이거 풀어 봐~"
우리 아이들은 담임이 워낙 웃긴 사람이라 일 년을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하하하, 깔깔깔, 그렇게 살았다.
퇴직을 하고도 그 습관이 사라지지 않아 남편에게는 깝식이, 우리 아들에게는 깝돌이라고 별명을 지어주었다. 아마도 '깝'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하던 때였으리라. 웃긴 건, 남편이 전혀 '깝'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이다. 회사의 점잖은 간부의 별명이 '깝식'이라는 걸 직원들이 안다면 아마도 뒤로 넘어갈 일이리라. "그렇게 말 없는 남편이랑 어떻게 살아?"라고 물었던 시댁 사촌 누님도 기겁할 일이리라. 그리고 우리의 깝식이가 깝식이답게 행동하고 있는 걸 안다면 더더욱 그들은 놀랄 것이다. 아침 출근길에는 뽀뽀와 함께 손가락 하트와 엄지 척까지 하며 나와 헤어지는 이 남자, 순전히 내 공인지, 이 사람 안에 그런 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머니 모시고 살 때는 점잖은 부부였던 우리가, 뒤늦게 신혼부부로 살고 있다. 책을 많이 읽고(요즘은 시집에 빠진 듯) 의식 성장이 팍팍 느껴지고 있는 아들에게는 더 이상 깝돌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고, 두 딸은 지혜 공주와 아기 공주라고 틈틈이 불러준다.
시어머님과 헤어질 때 늘 하던 '알라뷰'(시작은 우리 막내딸이었다)가 어머님 돌아가시고 난 후에 우리 집 공용어가 되었다. 그러다 그게 발전하여 '알라붕' 그게 더 진화하여 '한라봉'이 되었고, '오렌지'라는 말로 응답한 막내딸 덕분에 우리 집 사랑 표현은 더욱 풍성해졌다. '한라봉'까지 써먹던 남편이 며칠 전 출근하면서 '오렌지'를 말했을 때, 난 집에 들어와서 까르르 웃고 말았다.
'박 씨 가족♡'이 우리 가족의 카톡방 이름이다. 박 씨 가족은 오늘도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며, '가족이란 사랑'이라는 걸 마음으로 느끼는 하루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