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가르치던 반 아이 중에,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완벽해 보이는 아이가 있었다. 깔끔한 외모에 친절한 말씨에 성품까지 좋은 여자아이였다. 두루두루 다 갖춘 아이다 보니,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전교 어린이 부회장에까지 뽑혔다. 늘 밝은 얼굴로 성실하게 생활하는 그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나까지도 좋은 에너지를 얻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어느 날, 기가 막힌 사건이 있었다. 그 아이는 수업 시간에 옆 친구와 '작은 공책'을 계속 주고받고 있었다. 일단 공책을 달라고 하고는 수업을 계속 진행했다. 그때부터 그 아이의 안색이 돌처럼 굳어졌고 안절부절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
두 아이를 방과 후에 남으라고 해 놓고, 책상에 앉아 그 공책을 열었다. 아! 공책은 전체가 '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욕 일기'처럼 쓰여있었다. 우리나라 말에 그렇게 많은 '욕'이 있었던가!
머리가 휑한 충격을 받았다. '저기 앉아있는 아이가, 내가 알던 그 아이와 같은 아이인가!' 놀라움과 함께 그 아이의 심한 분노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늘 최고가 되어야 하는 부담감'을 그렇게 풀고 있었구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극심한 부담감'이 있었지만, 그 아이는 부모님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분노'가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했다.
분노!
분노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우리가 자주 만나는 무서운 일들이 연이어 뉴스에 등장한다. 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했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에 가슴이 아프고, 어머니를 살해하고도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던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프고,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이 사회가 가슴 아프다.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