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전임교에서 3학년 담임을 하며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를 넘어선 아름다운 만남이었다. 3월 초, 소라 엄마의 첫 편지로 인해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시험관 아기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다니는 일 말고는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아서 학교 행사에도 참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시고 제 딸 소라,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소라 엄마를 안심시키는 내용의 편지를 간단히 써서 보냈다. 그 이후로 우리 두 사람은 메일을 주고받는 사랑의 관계로 이어졌다. 몸이 많이 피곤해 보였던 날은 여지없이 소라 엄마의 따뜻한 글이 배달되었고, 그 사랑의 기운으로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 많은 메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분이신 것 같아요.”
난 지금도 그 글을 읽던 순간을 생각하면 많이 부끄럽다. 내가 정말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교사였을까? 오히려 그 이후에 나는 조금씩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던 것 같다. 소라 엄마의 칭찬은 오히려 나에게 참으로 아픈 채찍, 감사한 채찍이 된 것이다.
나는 다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 교사가 되려고 했다. 아니,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교직에 계셨던 아버지의 뜻에 내 인생을 맡겨버렸다. 불문과에 가고 싶었던 뜨거운 열정을 가슴 깊이 숨긴 채, 나는 교육대학에 진학을 했고 초등 교사가 되었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가슴앓이를 한 5년 정도하고 난 후, 서서히 그 마음도 엷어졌다.
아이들과 함께 있음에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도 나는 오랜 시간을 학교에 머무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로운 것인지 몸으로 보여주신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다.
“교사는 절대로 아이들을 미워할 자격이 없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야단을 치고 화를 낸다 해도, 그다음 날 아침에는 남는 마음이 없이 그 아이를 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도하기 어려운 한 명을 포기하고 나머지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그것은 훌륭한 교사의 모습이 아니다. 교사는 모든 아이를 가슴에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아버지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난 지금까지 하루 이상 아이들을 미워한 적이 없던 것 같다. 아마도 자동 조절장치가 내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아침이면 일찍 출근을 해서 창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을 맞이하며 웃는 내 모습이 참으로 어여쁘게 느껴진다. 내가 훌륭한 교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셨을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딸이 되어 산다는 것은 가슴 설레게 감사한 일이다.
♡<희망용인교육 2005년 봄호>에 실렀던 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