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진! 난 지금부터 그녀에 대한 글을 쓰려고 앉아 있다. 벌써부터 마음이 아파온다.
고. 은. 진.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수원에 있는 인계 초등학교 교장실이었다. 그녀는 전근을 와서 교장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나는 교장 선생님께 결재를 받으러 들어간 것이다.
서로 얼굴을 본 둘은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워 놀랐고, 그녀는 검은 가죽 재킷과 스커트를 입은 내 모습에 놀랐단다. 옷은 도전적이었는데 얼굴은 온순해 보였다고.
난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무조건 잘해주는 식으로 아이들을 대했고, 반 아이들에게도 따뜻하게 대해 주라고 늘 강조했었다. 학부모님들께는 편지를 띄우거나, 학부모 총회 때 도움을 청했다.
“그 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은 아니잖아요. 아이들이 그 친구와도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시고, 혹시라도 ‘그 아이가 우리 반이 아니었으면’하는 생각은 하지 말아 주세요. 우리가 함께 품어야 할 아이입니다.”
그런 말을 하면서 엄마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는 "이 친구를 우리 반에 보낸 건, 우리 반 아이들이 착하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착한 아이들은 지극정성으로 친구를 돌봐 주었다.
4월 중순, 나는 그녀가 있는 특수학급 교실을 찾아갔다. 내가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묻고 싶었다. 특히 아이가 떼를 쓸 때, 반 전체가 수업에 방해를 받고 아이는 아이대로 고집을 부릴 때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은요...”라는 표현을 썼다. 보통 교사들은 “우리 반 아이들은요.”라고 하는데, 마치 자식에 대해 말하는 느낌이랄까? 그녀의 조언은 이랬다.
“아이들이 한 인격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때로는 엄격하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를 알려주어야 합니다.”
나는 마음이 아파서 못할 것 같다고 했더니, 진정 아이를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졌고, 삶에 대해,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그녀가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그녀를 존경했다. 사랑했다.
나는 셋째 아이를 낳고 휴직을 했고, 그녀는 다른 학교에서 열심히 근무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께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요셉피나, 은진이가 많이 아파요. 지금 빈센트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어요.”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시어머님께 아기를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이야기 기를 들어보니, 출근길에 갑자기 힘들다고 하더니 거실에서 쓰러졌다고 했다.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급성 백혈병'이었다. 남은 기간은 한 달 정도라고 했다.
‘오, 하느님!’
나는 매일 어머님께 아기를 맡기고 중환자실에 갔다. 그녀가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 그렇게 아름다웠던 그녀는 짙은 회색빛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 예쁜 목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녀가 어머니에게 공책을 달라고 했다. 거기에는 “고마워요.”라고 쓰여 있었다.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삐뚠 글씨로.
의사의 말처럼 그녀는 한 달 만에 우리들 곁을 떠났다. 예쁜 남매를 두고,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학교의 아이들을 두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참으로 불꽃처럼 살았던 여자, 고은진! 아직도 그녀는 내 가슴에 뜨겁게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