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병 휴직 중이었다. 이제 한 달 후에는 학교로 돌아가야 했다. 컨디션은 거의 회복되었다. 난 당연히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친하게 지냈던 학부형이 전화를 했다. 언제 돌아오느냐고 내게 물었다.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 두 사람은 소리 내어 울고 말았다.
당연히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나와버렸다. 늘 지치고 아프고 힘들었던 그 시간들 속에 나의 가족은 저만치 밀려있었다. 교사로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하고 살았지만, 가족에게는 항상 파김치가 되어 널브러진 모습만을 보여주고 살았다. 껍데기만 아내요, 껍데기만 엄마였다. 그것도 세 아이의 엄마!
주변의 반대에 1%도 흔들리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 단 한 가지... 다섯 살 때부터 내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지어주셨던 아버지! 나의 아버지께 나의 떠남을 알려야 했다. 아니,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혀가 마비된 중풍 환자로 누워계셨다.
아버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나를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하셨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나의 아버지...
문득 스쳐가는 목소리가 있었다.
"언젠가 너무 힘들면 학교 그만둬라!"
오래전 내가 한 달 병가 중이었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하신 그 말씀이 나를 더욱 과감하게 만들었다. 17년 전, 그래서 난 교사가 아닌 평범한 주부가 되었다. 몸이 회복되면서 그동안 읽지 못했던 책을 미친 듯이 읽었다. 몇 달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숨이 크게 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제 살겠다'라는 느낌! 학교 아이들, 아이들에 대한 미련은 없었다. 내 모든 열정을 다 바쳤기에 그랬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