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겨우 마음을 다스리고 나면 또 다른 일로 어머님은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드셨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이 휴식공간이 아닌, 답답하고 불편한 공간이었기에 내 몸과 마음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자주 한숨을 쉬었고, 주일 미사 시간에는 한 시간 내내 울었다. 어린아이와 노인을 특별히 좋아했던 나는 학교에서도 좋은 선생님이었고, 연세 있으신 선생님들께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싹싹한 젊은 교사였다. 그래서 남편이 어머님을 모시자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을 때 나는 그 자리에서 오케이를 하며 웃었던 것이다. 햇살처럼 환하게 웃던 남편의 표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내가 어머님에 대해 몹시 힘들었던 점은, 늘 짜증 섞인 말투로 툭툭 내뱉으시고, 험담을 습관적으로 하시며, 함부로 남을 무시하시는 것이었다. 내 눈에 평범해 보이는 사람도 어머님 입을 통하면, 푼수가 되고, 화상이 되곤 했다. 그 부정적 기운이 너무 강해 내 영혼까지 어두움으로 물이 드는 느낌이었다. 더더욱 내가 힘들었던 어머님 습관은 '거짓말'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거짓말과 이기적인 행동과 비겁한 행동을 절대 하지 말라'고 귀가 따갑게 아버지께 훈화 교육을 받은 나로서는, 어머님의 잦은 거짓말이 너무나 힘들었다.
그 많은 것들 중 하나의 예는, 어머님 환갑잔치를 준비하던 때에 일어났다. 형님과 함께 유명한 뷔페식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돌아오신 어머님은, 퇴근한 내 앞에서 계속 작은 소리로 그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손님 대부분이 시골에서 올라올 텐데, 얼마나 불편하겠냐고 걱정을 하시며 아무래도 한정식당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모습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형님께 전화를 했더니 다음날 어머님과 통화해 보겠다고 했다. 그다음 날 퇴근하고 돌아온 내게 형님은 전화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동서, 어머님은 그런 말 한 적 없으시다는데? 동서가 돈 아끼려고 그런 말을 한 거 아니냐고 말씀하셨어."
가슴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어머님 용돈은 물론 자주 요구하시는 목돈까지 아까운 마음 없이 척척 드리고 사는 며느리인데,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분노가 불길처럼 타올랐다. 그런 분노가 쌓이고 쌓여 나는 젊은 나이에도 늘 아팠고 울화병 환자가 되어 버렸다. 늘 환히 웃던 내가 자주 찡그려고, 몸은 점점 말라가 41킬로의, 마치 폐병 환자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결혼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수원 남문 앞을 지나가다가 예전에 가르치던 학생의 엄마를 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쳤지만, 그녀는 모르는 사람을 보듯 그냥 지나갔다. 나는 그녀에게 쫓아가 내 이름을 말했다. 그녀는 너무나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어떻게 이렇게 변하실 수 있냐고,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시어머님 모시고 살겠다고 말하는 딸에게, 고생 많이 하신 분이니 잘 모시고 살라고 말씀하셨던 친정 부모님께, 내가 사는 현실을 말씀드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부모인데 어찌 그걸 모르랴! 빼빼 말라가는 딸의 몸과 시커먼 다크서클, 그리고 행사 때 와서 자주 침대에 누워있던 딸의 모습에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을지... 아버지 돌아가신 후 차 안에서 내가 통곡하며 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결혼 이후 자주 아픈 모습을 보이고 살았던 것! 나름 효녀라고 생각도 했지만, 자랄 때는 참 고맙고 이쁜 딸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나는 엄청난 불효를 저지르고 산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17년을 모시고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분가를 하고 난 후에 우리 어머님은 180도로 변하셨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절대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다. 당연시하던 것들에 늘 고맙다고 하셨다. 인상도 변하셨다. 내가 좋아하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어머님은 참 고우셨다. 말기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막내며느리가 병원에 있는 시간에는 통증이 없어서 좋다는 말을 당신 따님께 하셨다고 한다. 어느 한 날은 말기 암 환자로 고통받고 사는 게 너무 힘드셨는지, 내 손을 잡고 아기처럼 우시기도 했다.
내 마음에 천사로 살아계시는 나의 어머님! 어머님을 닮아 음식을 정성껏 만드는 내 모습, 그 모습에서 어머니를 발견한다. 첫 번째 파김치는 생각처럼 되지 않았지만, 두 번째 파김치는 엄청 맛있을 것 같다. 이쁜 우리 어머니, 고운 우리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