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오후 세 시쯤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이른 퇴근을 해서 어머님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나는 그러라고,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날은 어머님이 집에 오시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던 나의 절친이 전화를 했다. 그만 청소를 멈추고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서 어머님을 모시고 와야 한다고 재촉을 했다. 나는 알았다고, 남편에게 나를 태워서 같이 가자는 카톡을 보냈다.
병원 로비에 도착했더니 형님과 아주버님이 미리 와서 우리를 맞이하셨다. 아주버님은 담담한 표정으로 우리 부부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의사 선생님께 잘 말씀 드려놓았으니, 어머님은 밖으로 안 나가셔도 됩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남편이 우리 집으로 모셔간다고 말씀드렸을 텐데?'
나는 두 분의 눈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아니라고, 어머님 모실 준비가 끝났으니 우리 집으로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아주버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넷이 같이 의사 선생님을 뵈러 들어가자고 하셨다. 어머님의 주치의는 젊고도 선한 눈빛을 가진 분이셨다. 어머님의 1일 외박(입원한 후 한 달이 지나면 퇴원했다가 다시 입원을 하는 의료 시스템이 있다)을 못 하게 막으시는 아주버님의 뜻을 남편에게 전해 들은 후, 나는 혼자서 주치의를 찾아갔었다
"선생님, 저는 어머님을 모시려고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왜 어머님을 못 나가시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몹시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치의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호자분들이 의견을 하나로 통일해서 오셔야지, 큰 아드님 부부는 오셔서 어머님을 모실 집이 없으니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을 해서, 의료법이 그럴 수는 없지만 알아는 보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경우가 제 입장에서는 매우 곤란하고 불편합니다."
며칠 전에 찾아왔던 막내며느리와 그전에 찾아왔던 큰아들 부부와 무거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막내아들, 그 네 사람을 바라보는 주치의의 표정은 매우 불편해 보였다. 아주버님이 대표로 나서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한 태도로 말을 꺼내셨다.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저희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 심장이 벌렁벌렁 요동을 쳤다. 병원에 계시면서 매일 집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셨던 어머님이신데, 법적으로도 그런 제도가 있는데, 왜 그걸 저렇게 악착같이 막으려고 하실까? 우리 집으로 모시겠다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시는데... 지금 뭐 하시는 거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는 간절한 눈빛만 주치의 선생님께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고, 그분은 내 손을 들어주셨다. 나는 속으로 감사합니다,를 크게 외쳤고, 그 자리에서는 목례를 하고 나왔다. 어머님 병실로 올라가는 발걸음이 두둥실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님께 집으로 가자고, 어머님이 의사 선생님 말씀을 너무나 잘 들으셔서, 밖에 나가는 걸 허락하셨다고 말씀드렸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꾹 눌러 참으며 어머님 옷을 입혀 드렸다 36킬로그램으로 많이 마르신 어머님께 옷을 입혀드리는데, 옷이 너무나 헐렁해 있어서 가슴이 아팠다. 간병하시는 분도 함께 모시고 갔다. 어머님 약을 처방받고 주의사항을 수간호사님께 들은 후, 휠체어에 어머님을 모시고 우리는 집을 향했다. 운전 속도를 최대한 줄이라는 간호사님 말씀에 따라, 남편은 30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운전을 했다. 마치 소풍을 가는 어린아이처럼, 어머님은 창밖의 꽃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예쁘다고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집에 도착해 안방 침대에 있는 보송보송하면서도 가벼운 이불을 만져보시고는, 이런 이불은 처음 봤다고, 어쩜 이렇게 보드랍냐고 감탄을 하셨다. 어머님을 위해서 이불 가게에서 가장 비싼 이불 세트를 산 걸,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서울에 있는 큰딸까지 내려와 우리 가족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어머님 옆에서 종알종알 떠들었고, 어머님은 당신이 환자라는 걸 잊고 환하게 웃고 계셨다. 어머님은 침대에서, 간병하는 여사님은 침대 옆 매트에서 주무시는 동안, 우리 부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거실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아침 식사까지 마치신 어머님을 다시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아주버님과 형님이 병원에 미리 도착해 있었고, 아주버님은 휠체어를 타신 어머님을 병실로 모시고 올라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마치 전투를 치른 느낌이었다. 어머님의 첫 소풍은 매우 아름다웠고, 그다음 소풍을 어머님과 기약했지만, 어머님은 다음 소풍 일이 오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어쩌면 없었을지도 모를 어머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풍은, 어머님에게도, 우리 부부에게도, 우리 삼 남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참 소중하고 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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