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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Dec 21. 2023

선택의 힘

첫눈 다운 첫눈이 펑펑 내렸다. 아직도 첫눈이 오면 나는 동네 강아지 마냥 좋아한다. 남편을 만난 이후 첫눈이 오면 항상 남편에게 연락을 하곤 했다. 만난 후 처음 맞이했던 첫눈이 내리던 날, 나는 언덕 위에 있던 건물의 교실에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와 교무실 옆 공중전화로 달려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짧은 통화 후에 다시 언덕을 올라 계단을 오르는 동안 꽤 숨이 찼을 텐데, 너무나 행복했던 10분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서른 번이 넘는 '첫눈 오는 날'을 맞이했고 올해는 함께 그 아름다운 광경을 지켜보았다.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는 일, 천둥과 번개와 홍수와 가뭄, 이런 많은 것들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한껏 잘난 체를 하다가 그 힘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가는 '선택'을 할 때는, 경험과 지혜와 그 사람의 역량이 총동원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선택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 사람이 어느 정도 수준의 사람인지, 어떤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자연스레 판단하곤 한다.


살아온 내 모습을 떠올려 본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왔을까? 자식으로서는 부모님께 늘 순종하는 자세를 선택했다. 불문과에 가고 싶었던 내 뜨거운 열정을 철저히 숨긴 채,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가 정해주신 교사의 길로 들어섰다.


​며느리로서는 어땠을까? 잘해보려고 애는 썼으나, 늘 눈치 보기 바빠서 내 뜻이 많이 꺾였다. 그래서 홀로 살고 계시던 시아버님 모시기가 늦어져, 정작 아버님을 모실 큰집에 입주하기 세 달 전에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말았다. 평생을 가족과 함께 살지 못했던 그 한 맺힌 삶에 대해, 그리고 용기 있게 추진하지 못하고 반대에 눈치를 보던 내 무능력함에 난 얼마나 비통했던가!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한 달을 울고 또 울었다.


교사로서 난 어땠는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철저히 준비된 나였기에, 훌륭한 교사이셨던 아버지가 늘 강조하시던 말씀을 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시켰고, 최대한 실천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나의 교직 생활을 떠올리면 아쉬움이나 후회가 별로 없다. 그런 내공이 있던 교사였기에, 30여 년 전,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었으리라. 그 학교는 '정숙 시범학교'였다. 학교 전체를 수도원처럼 조용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전 교사와 전 학생이 사뿐사뿐 걸어 다녀야 했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젊은 교감 선생님은, '뛰는 친구 이름을 5명 적어서 신고하기' 제도를 강행하셨다. 나는 교사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판단했기에, 아이들에게 '신고제'를 전달하지 않았고, 왜 복도에서나 교실에서 뛰면 안 되는가에 대해서만 설명했다.


내가 보기에 아주 우수한 우리 반이었지만, 학교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정숙 꼴찌 학급'이 되어, 우리 반은 교내 방송을 타게 되었다. 밖으로 나가서 잡초를 뽑으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고, 아이들과 나가서 풀을 뽑았다. 비록 꼴찌였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된, 40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나의 인생 동반자들이다.


​내 인생에 교사 노릇과 '맏이 아닌 맏며느리' 역할에 지나치게 에너지 소모가 많아, 남편과 우리 삼 남매에게는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고 살았다. 그 두 역할을 끝내고 나니, 비로소 그나마 내 가족에게 넘치는 사랑을 주며 산다. 미안하고도 고마운 내 사랑들이다.


선택의 힘! 준비되어야만 덜 후회되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나 스스로에게 당당한가? 내 선택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의 수는 대략 얼마쯤 되는가?'


우리 모두가 그것을 인지하며 살 때, 이 사회가 좀 더 살 만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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