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떠올려지는 하나의 기억으로 '설날 복조리'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누군가 우리 집 마당에 던져 놓은 복조리를 주워다가 엄마에게 갖다 드리면, 엄마는 나중에 복조리 값을 받으러 온 분에게 꼭 돈을 드렸다. 그 작은 조각의 기억이었던 복조리가 훗날 나를 울리게 될 줄 몰랐다.
설날 이른 새벽
한 여인과 작은 사내아이가
복조리 잔뜩 담긴 자루를 메고
길을 걷는다
또박또박
투박투박
거리엔 아무도 없다
매서운 칼바람만 있을 뿐
남편이 들려준 어린 시절의 모습이 늘 내 가슴에 살아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여러 번을 울었다.
회식이 있어 늦게 들어온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머님 이야기를 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촉촉해졌다. 그건 남편이 속으로 울고 있다는 의미였다. 칼바람을 이겨낼 강인함이 있었기에 삼 남매를 키워내셨을 거라는 남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삼 남매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어머니는 점점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셔야 했을 것이다. 두 며느리가 어머니 앞에서 얼어붙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혜로운 우리 어머니는 스스로를 녹일 줄도 아셨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어머니는 연세를 드실수록 부드럽고 온화한 분으로 변하셨다. 시댁 친척분들께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 대하기가 힘들지만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라 잘 모셔야 한다고.
시집살이로 눈물도 많이 흘렸지만, 가여운 '여자의 일생'이었기에 나는 견디었을 것이다. 어머님의 사랑은 내 상처를 아물게 하셨고, 고운 모습으로 이 세상을 떠나셔서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실 거라 믿는다. 미움이, 원망이 사랑으로 바뀌는 기적을 체험했다. 해피엔딩이어서, 그게 늘 감사하다. 내게 그리움이 되신 우리 어머니!
♡사진 : 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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