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울화병
채수아
아내가 말한다
"당신 그때 그랬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몇십 년 전의 일까지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아내에게 되레 큰 소리를 뻑뻑 지르다 역풍을 맞은 적이 있다
나를 만나 지독한 고생을 한 여자, 우리 엄마를 자기 엄마처럼 살뜰히 챙긴 여자, 내 형제들을 자기 형제처럼 보듬어준 여자, 그 여자가 내 아내인데
내 기억이 모자라면 어떠랴!
내가 별 거 아니라 여겨지는 것도 아내가 뼈저리게 속상했다면 속상한 거다
난 이제 똑똑해지기로 했다
무조건 항복이다
잘못했다고, 당신 고생 많았다는 몇 마디면 사르르 풀어질 일에 이젠 똥고집 같은 건 부리지 않는다
이혼은 안 하고 살지만, 철저한 거리 두기로 자기 식구들을 대했던 아내가 가끔 미워죽겠다는 친구가 있다
가끔 성질도 부리고
가끔은 이쁘지도 않지만
그래도 의리를 지키고 산 내 아내가
고맙고 또 고마워서 난 평생 머슴으로 살기로 맹세를 했다
육십 평생 살아오면서
내가 이렇게 기특한 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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