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수아 Jun 15. 2024

쓰레기봉투와 층간 소음의 관계

이사 온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예전 동네에서 오래도 살았지만, 사람들과의 소통을 살갑게 하고 살아서 집을 나서면 인사하느라 바빴다. 이사 온 이곳도 아파트 대단지이지만, 왠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첫눈에 반해 바로 그날 가계약을 했을 정도로 이 집에 꽂혔고, 매일 이 집에 감사하며 흥얼거리며 청소를 하곤 한다. 산책 코스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예전 동네에서는 늘 아파트 단지를 빙 돌면서 산책을 했고, 가끔 근처에 있는 야산을 올라가곤 했는데, 여기는 동네 산책 코스도 좋지만, 근처에 예쁜 공원이 있고, 조금 더 가면 둘레길에 이어 산으로 연결이 되어 좋다.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마치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세탁소 아저씨와 꽃 가게 새댁과 정육점 아줌마와 마켓 알바생과는 반갑게 인사하며 만나고 있지만, 밖을 나가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굉장히 편안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지난주에 예전 동네 앞집 엄마가 카톡을 했다.


"언니, 놀러 와요. 앞집 새댁(우리 집에 이사 온 ㅎㅎ)과 셋이서 밥 먹어요. 보고 싶어요."


과일이 오가고, 케이크와 떡이 오가고, 반찬이 오가고, 쌀자루가 오갔던 우리 두 집! 참 정겨웠었다. 어머님 병중에도 기도 부탁을 했을 정도로 마음이 이어진 관계였다. 이사 오기 전에 책 정리를 하면서 동네 고등학교에 기증을 했고, 이어서 앞집 사 남매를 불러 갖고 싶은 책을 골라 가라고 했다. 중학생부터 유치원생까지 두 집 현관을 통해 몇 번이나 책을 날랐다. 앞집 엄마가 읽으면 좋을 책들도 챙겨주었다. 육아 휴직을 두 번이나 하면서 아파트 엄마들과 잘 지냈었지만, 가장 정 깊게 지낸 이웃이었다. 이사를 오니, 맛난 음식을 사 와도, 좋은 먹거리 선물의 양이 많아도 늘 앞집이 떠올랐다.

이사를 오고 며칠 후에 현관문을 열자 엘리베이터 앞에 할아버지가 서 계셨다. "나는 앞집에 사시나 봐요?" 물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우리 앞집에는 70대 정도 연세의 노인 부부가 사신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현관문을 열면 쓰레기봉투가 자주 눈에 띄지만, 우리 부부는 전혀 신경을 안 쓰고 산다. 주택에 살 때 쓰레기를 마당에 놓아두는, 그런 습관이 이어진 게 아닐까 추측을 한다.


우리 시어머님은 아이들이 뛰는 소리에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호소하셨던, 아래층 아주머님의 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으셨다. 학교에 안 나간 어느 휴일, 김밥을 싸서 우리 집으로 올라와 두통에 시달린다고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던 아주머니께 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또 숙였다. 내가 있을 때는 절대 안 뛰던 아이들이, 괜찮다 하시는 할머니 앞에서는 계속 뛰어다녔던 모양이다. 그 후 아랫집은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고, 우리 어머니는 '아이들은 뛰면서 크는 거라고, 그런 것도 못 참으면 어떻게 아파트에 사느냐'고 내게 말씀하셔서, 내 가슴을 몹시 답답하게 하셨다. 이런 죄스러운 경험이 있었으니, 나는 윗집 소음에 좀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사 와서 본 쓰레기봉투도 눈에 안 보이면 좋겠지만, 그냥 받아들이고 있다.


불의에는 용기 내어 말해야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에는 되도록 날 새우지 않고 살아가려 한다. 오랜 습관과 의식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삶과 죽음에 대한 묵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