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을 평생 안 보고 살 줄 알았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던 건 아니었고, 단지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교사로 근무를 하면서 똑똑하고 친절하고 매우 아름다운 한 선배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내가 호감을 많이 느꼈던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에, 학생들의 전입과 전출을 담당하는 '학적 업무'를 맡았었는데, 경상도 어디에서 수원으로 올라오게 된 한 학생의 서류를 처리하고, 배정 순서에 따리 반을 정한 후에 두 사람을 데리고 배정 학급으로 올라갔다. 그때의 담임교사가 바로 그 선생님이셨다. 그날 오후에 복도에서 그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너무나 친절하게 내게 다가오더니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하셨다. 아침에 전입한 그 학생의 엄마가 남편의 갑작스러운 발령에 황당한 마음으로 수원에 오게 되었는데, 나의 친절한 태도에 수원의 이미지가 좋아져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단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그 선생님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고, 나는 셋째 아이 육아휴직으로 학교를 떠났다. 복직을 한 후에 그 학교에서 근무를 더 하고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거기에서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 너무나 반가웠었다. 더군다나 감사하게도 동 학년 교사가 되어 우리는 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가 학교 업무적으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다른 사람처럼 행동을 하셨다.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그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는 그 일을 끝내야 하는 한 달 동안 멘붕 상태가 되었다. 학교 어르신들께 결재를 맡는 과정에서 그 선생님의 '거짓 보고'까지 알게 되었다. 나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 거짓말로 해서 그분께 어떤 이득이 되었을까? 어쨌든 나는 그분으로 인해 그 일을 처리하느라 몹시도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 수업 준비에 방해를 받을 만큼. 이어서 한 달 정도를 퇴근 후에 병원을 다닐 만큼.
그리고 그 학교에서 근무를 더 하고, 난 병 휴직 1년을 한 이후 복직을 하지 않고 퇴직을 선택했다. 늘 체력이 달려 지친 몸으로 생활했던 나! 그나마 학교에서는 약 먹은 사람처럼(나는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로 출근을 해도 학교에서 아이들 얼굴을 보면, 없던 에너지가 솟았었다. 신기하게도) 활동을 했지만, 파김치로 퇴근하여 내 남편 내 아이들에게 못난 모습을 많이 보였고, 주말에는 병든 닭처럼 침대에 자주 누워있었다. 그랬던 내 모습이 떠올라, 몸이 많이 회복이 되었음에도 나는 퇴직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 선택의 소식에, 내가 맡았던 마지막 학교의 한 엄마가 전화를 걸어 통곡을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의 퇴직 소식에 학교에서 송별회를 해주었는데, 나는 마지막 그 행사를 나오면서 그 선생님께 한 통의 편지를 드렸다.
"선생님, 제가 그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겁니다. 왜 그런 행동을 하셨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이후 그분을 만날 일이 없었고,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그분은 내 기억에서 완전히 잊혔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분의 얼굴이 스쳐갔다. 정말 깜짝 놀랐다. 완전히 잊혔던 얼굴이 갑자기 왜 나를 스쳐가는 것일까? 난 그날 오전에 그분께 전화는 하지 못하고, 카톡을 보냈다. (사실 그때까지 카톡에 그분이 들어있는 줄도 몰랐다) 간단한 안부 인사였는데, 그분은 내게 고맙다는 긴 답글을 보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좋은 글과 동영상을 내게 자주 보내주고 계신다. 그러다가 만남을 다시 시작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인연이란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