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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Jul 18. 2024

미녀와의 수다

지난주 염색을 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눈에 확 띄는 미인 한 사람이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련된 커트 머리에, 심플한 원피스에, 납작한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피부는 가무잡잡한 편이었고, 이목구비는 시원하게 예뻤다. 40대 초반일 거라 짐작했고, 몸매로 봐서는 결혼을 안 한 골드미스 느낌이었다.


그녀는 예전처럼 흑갈색 염색을 해달라고 원장님께 주문했다. 외모는 도시적인 세련미가 물씬 풍겼지만, 말하는 투는 굉장히 소탈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였다. 여섯이나 되는 언니들 이야기를 우리에게 재미있게 들려주다가, 어느새 원장님도 나도 그녀의 '언니'가 되어 있었다. 자기는 10남매의 막내로 태어났고, 친정 엄마 연세가 95세라고 했다. 내가 "결혼했군요? 미혼 느낌이에요"라고 말했더니 군대 다녀온 아들까지 있다고 까르르 웃었다.  


계속 이어지는 그녀의 집안 이야기는 드라마보다도 더 재미있었다. 95세 엄마는 '공주과'라서 자식들이 모시기가 힘든 분이라고, 그건 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엄마를 과잉보호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자기는 막내딸이라 그러지 않았지만, 엄마는 늘 공주님이었고 딸들은 무수리였다고, 지금도 언니들이 한을 품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입담에 우리 두 사람은 계속 깔깔거리며 웃었다.


큰언니와의 나이 차이가 얼마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일찍 세상을 떠난 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언니는 아들 하나를 낳고, 둘째인 딸을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언니가 죽은 후 형부와 남매가 친정에 들어와 살았고, 사위를 아들처럼 사랑했던 친정 엄마는 사위의 좋은 배우자를 고르기 위해 꽤 공을 들였다고 했다. 마음씨 좋고 자녀가 없는 한 여자를 사위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두 사람은 결혼을 해서 오랫동안 사이좋게 잘 살다가 몇 년 전에 형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떠나면서 아이들의 새엄마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말했고, 재산도 아내에게 많이 물려주었다고 했다. 남매는 새엄마와 관계가 좋은 편이고, 아기 때 새엄마를 만난 딸은 친엄마라고 생각하며 자랐기 때문에 사실과 상관없이 엄마와 각별한 사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형부의 새 아내는 지금까지도 자기 가족과 연락을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자기의 친정 엄마를 모시고 사는 건 둘째 언니 부부인데, 생활비는 돈 많이 버는 아들들이 대 드린다고 했다. 친정 엄마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이 막내딸인 본인인데, 모시고 사는 둘째 언니가 가끔 질투하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했다. 엄마는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늘 자기의 무릎을 베고 누워계실 정도로 자기를 좋아해서 민망할 정도라 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둘째 언니의 질투가 좀 속상하다고 말하니, 그 지혜로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단다.


"모시고 사는 사람이 가장 힘든 거야. 처형 부부가 책임을 지는 덕에 우리 모두는 장모님에 대해 덜 걱정하며 살고 있잖아. 우리 모두는 무조건 처형 부부께 잘해드리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해."


그녀와 잘 어울릴만한 남자의 말이다. 그녀와 내 염색이 끝나고, 그녀는 자기에게 예쁘다고 계속 노래를 불렀던 우리 두 언니를 위해 떡을 사다 주겠다고 했다. 원장님은 계속 그러지 말라고 하셨지만, 나는 뻔뻔하게 "두 팩만 사 와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 까르르 웃으며 떡 세 팩과 식혜 큰 병 하나를 사 왔다. 셋이서 떡을 맛있게 먹은 후, 그녀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가고 없는데도 미용실에는 그녀가 남기고 간 '환한 에너지'가 가득 차 있었다. 어디에서나 고운 향기가 날 예쁜 그녀! 그날 그녀를 만나 나는 또 인생 공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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