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형인 내가 세 시가 조금 안 된 시간에 일어나 보니 카톡 방이 난리가 났다. 내 마지막 학교 6학년 모임을 하자고 교장 선생님께서 연락을 하셔서 추진하고 있었는데(교장샘은 6학년 부장을 하시다가 그때 교무부장이 되셨다. 나는 평교사였다가 갑자기 6학년 부장이 되었다. 교무부장님이 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카톡 방이 만들어졌고, 내가 자고 있던 밤 11시에 나머지 사람들을 용케 찾아 모두 들어와 있었다.
벌써 10여 년 전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학년부장인 내가 병 휴직을 하고 퇴직을 했으니 모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가, 작년에 그 당시의 여자 교감샘(지금은 교장샘으로 근무하시다가 퇴임)과 교무부장님 식사 대접을 하느라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자연스럽게 6학년 모임으로 연결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수원 만기가 되어 수원 밖으로 나가야 할 상황이 되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용인시였는데, 용인이 구역이 넓어 아주 먼 곳으로 발령이 나면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다닐 수도 있다는 말에 겁이 덜컥 나서 갑자기 운전면허를 초고속으로 따게 되었다. 겨울 방학이었던 1월에 운전학원을 다니면서 운전을 어쩜 그렇게 못하냐고 강사로부터 온 구박과 눈총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시험은 한 번에 다 통과가 되어 면허증을 바로 받았고, 2월에 차를 사서 3월부터 운전을 하며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일단 연습용으로 수원의 마지막 학교 1년을 운전하며 다녔고, 1년 후에 나는 용인과 수원의 경계 근처에 있는 신갈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 예전 학교 가는 시간이나 비슷한 거리였다. 겁이 많아 평생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했던 내가 그렇게 해서 운전을 시작한 것이다.
셋째 육아휴직 후 사직서를 썼다가 교무부장님의 실수로 서류를 재작성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하늘의 뜻이니 복직을 하라는 교무부장님의 권유로 다시 학교로 돌아간 나, 하지만 그 몇 년 동안 나는 여전히 몸이 약한 교사였고 여전히 학교생활은 힘겨웠다. 심하게 몸이 아플 때는 복직한 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 그나마 몸이 약한 교사였어도 아이들 예뻐한다고 어르신들이 나를 그리 내치지는 않으셨다.
신갈로 전근을 갔으니 내가 몸이 약한 교사라는 것을 어르신들은 전혀 모르셨고, 나 또한 그 꼬리표를 떼고 싶어서 말씀을 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다. 6학년 담임교사가 된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결혼하기 전에 딱 한 번 해 보았던 6학년 담임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누구냐? 난 잘할 수 있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6학년 담임 역할을 재미있게 해 나갔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중학생을 지도하는 듯한 느낌도 좋았다. 아이들이 정이 많으면서도 투박했다. 정말 즐겁게,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가 갑자기 교무부장님의 사망으로 우리 부장님은 교무부장으로 올라가시고, 학년에서 최고 연장자인 내게 학년부장을 하라고 어르신들이 권유하셨다. 못한다고 못한다고 계속 그러다가 수락을 했다. 그때 나의 몸 상태에 대해 말씀을 드렸어야 했는데, 나는 차마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내게 너무나 버거웠던 6학년 부장의 역할로 나는 점점 지쳐갔고, 늦은 가을에 입원까지 했다. 아이들을 졸업시킬 때 아이들에게 소홀했던 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 미안했다는 편지를 반 아이들에게 나눠준 기억이 있다.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 학년부장! 지금 생각해도 참 어울리지 않는 자리다. 착한 동 학년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그 일 년이 그나마 아무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내가 학교를 비웠던 3 주 동안 동 학년 선생님들이 얼마나 우리 반과 내 업무를 챙겼는지, 돌아와서 감동과 감사로 가득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났다. 새벽에 카톡의 글들을 읽어 내려갔다. 열정과 성실로 똘똘 뭉치셨던 교무부장님은 교장샘으로, 파릇파릇했던 아가씨샘은 두 아이, 세 아이의 엄마샘으로, 아들을 초등생으로 입학시키며 고민을 이야기하던 젊은 엄마샘은 고딩 엄마로, 비실거리던 학년 부장 채수아는 등단한 동시 작가와 네이미스트로.
우리가 만날 8월 16일, 우리 모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까? 얼마나 행복한 미소를 지을까? 상상만 해도 너무 좋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