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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Oct 11. 2024

아버지 복

오래전 상록 문학회에 가서 시 낭송을 했다. 아버지의 첫 제자인 최 세균 목사님의 초대를 받은 것이다. 시인이면서 상록 문학회를 이끌고 계시는 목사님은, 아버지를 6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6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대단한 제자이다.


어릴 때부터 자주 만났던 오빠였기에 우리 형제들에게는 큰오빠 같았고, 아버지에겐 그야말로 아들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오빠는 한 마디로 아버지 인생을 더 빛나게 해 준 사람이었다. '내가 인생을 그래도 잘 살고 있구나'하는 보람을 가장 드러나게 보여 준 존재! 그런 오빠는 아버지 정년퇴임식 때, ‘시와 사랑’이라는 작은 시집을 만들어서 오신 손님들에게 나눠 주었다. 아직도 난 그 작은 시집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세워 놓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시집 안에 있는 아버지 사진을 바라본다. 나를 보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계시는 아버지.


그 시집을 보면, 오빠가 6학년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가 큰 상을 받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가 상장을 들고 옆 반에 자랑하고 다니셨는데, 많이 쑥스러웠다는 이야기. 가난했던 그 아이는 어느새 목사님이 되었고 시인이 되었다. 오빠가 아버지를 그렇게도 사랑하고 따른 이유는, 어린 소년에게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란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와 인연을 이어가고 계신다.


어릴 때부터 내 옆에서 늘 함께 책을 읽으셨던 아버지, 월급을 타는 매달 17일이면 동네 통닭집에서 뜨거운 통닭을 들고 집으로 뛰어오셨던 아버지, 나에게 ‘국어 박사’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아버지, 다섯 살 어린 그때부터 내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셨던 아버지, 내 결혼식 날 아침, 큰절을 올리는 나를 보고 많이 우셨던 아버지, 만삭이 된 내게 학교는 임산부에게 위험한 곳이 많으니 늘 조심하라고 하셨던 아버지! 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계단을 오를 때면 한 걸음씩 조심조심 오른다는 걸 아버지는 아실까?


오빠에게나 나에게나 너무나도 특별했던 아버지의 존재! 우리는 얼마나 복이 많은 사람일까? 길을 잃고 헤맬 때,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주저앉아 있을 때, 가끔은 세상이 내 편이 아니라는 생각에 힘들어할 때, 금방 떠올릴 수 있는 존재가 있으니까. 아버지는 지금도 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우리 딸, 잘할 거야. 넌 늘 자랑스러운 아버지 딸이었잖아.”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께 난 마음으로 말씀드린다.


“아버지, 아버지가 저의 아버지여서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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