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잔소리하는 사람이 줄어들었다.
어느새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하는 입장이 되었고,
누군가가 내 선택을 걱정스레 말려주는 일은 드물어졌다.
그래서인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잔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
내 잘못을 꺼내고,
그럼에도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조금은 시끄러운 소음 같은 존재 말이다.
어쩌면
그 역할이 바로 일기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일기 쓰기는 참 어려웠다.
내 생각을 글로 적는 일이 괜히 창피했고,
마치 마음을 벌거벗겨 놓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몇 주 전에 쓴 글을 다시 읽다 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순간이 참 많다.
그래도 그냥 쓴다.
나중에 이불킥을 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땐 이렇게 말해보려고 한다.
“아,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나는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아내가 참 좋았다.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화가 날 수도 있고,
짜증을 낼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을 수 있을까 늘 의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참 오랜 시간 나를 견뎌준 사람이다.
내 부족함을 어루만지고,
불편함을 타일러 고쳐주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기다림과 견뎌줌이 아닐까.
그러다 다시 나에게 묻게 된다.
나는 나를 잘 견디고 있는가.
나는 나를 못 견뎌하며
안타까워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원래 친구들을 참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
참 행복했었다.
하지만 사업을 하며
그 시간을 스스로 지워버렸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나를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애원하는 꼴처럼 느껴졌다는 걸.
육아로 지쳐 있는 아내에게
“나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하는 게
너무 창피했고,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여지를 주지 않고 멈췄다.
최근 몇몇 친구들에게서
서운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아마도 나는 지금처럼
너희를 자주 만나지 못할 거라고.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그래도 나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이 선택이 맞는가.
지금의 대답은
“지금은 맞다”였다.
이 글을 10년 후에 다시 읽을 때도
같은 답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나를 기다려준 가족,
그리고 회사의 동료들.
그들을 뒤로하고
나만 스트레스를 풀며 시간을 써버릴 수는 없다.
적어도 노력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은 날에는
책을 펼쳐 들고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이려 한다.
그리고 나를 견뎌준 사람들에게
아직 나는 할 수 있고,
아직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결과보다
과정 속에서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삶과 사람들에게
조용히 응원을 보내려 한다.
더 이상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지금의 내 마음은 이렇다.
더 많은 사람을 챙겨야 한다면,
먼저 우리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우리를 믿고 맡겨준 고객들에게,
그리고 오랜 시간 나를 기다려준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 하고도
마음이 남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도 늦지 않다고 믿고 싶다.
내 생각이 글이 되어
한 곳에 머물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이 글이
지금의 내 마음과 가장 닮아 보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에게 편지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