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선글라스가 발견되었을 때 모두 시큰둥했다. 발견자는 ‘건’. 마을의 모든 말썽과 문제를 몰고 다니는 젊은것의 정신 나간 장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난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자 사태는 심각해졌다. 촌장과 각 구역 대표자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봤지만 이 물건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결국 촌장은 마을 전체 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대 가뭄이 시작되었던 해에 처음 전체 회의가 있었다고 했으니 꼭 100년 만이었다.
대 가뭄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세상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재앙이 닥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긴 가뭄이라고 생각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두 달, 넉 달, 열 달을 넘기면서 문제들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정부의 공식적인 가뭄 위기 선포와 함께 물과 음료수를 팔던 마트와 편의점이 가장 먼저 타깃이 됐다.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물을 구하기 위해 목욕탕, 수영장, 약수터로 몰려들었고, 한발 늦은 사람들은 근처 개천이나 강으로 달려가 아직 마르지 않은 물을 어떻게든 더 많이 가져가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 약삭빠른 사람들은 빌딩이나 개인 주택에 설치된 물탱크를 노렸다.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물이 마르자 사소했던 신경전이 말싸움이 됐다. 말싸움은 곧 몸싸움으로 번졌다. 몸싸움은 결국 살인이 됐다. 광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나자 소수의 사람들만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다. 사람과 사람, 도시와 도시는 철저하게 단절됐다. 사람들은 그렇게 괴물이 되었고, 세상은 그렇게 지옥이 되었다.
지옥을 되살려 낸 건 비였다. 대 가뭄이 시작된 지 꼭 일 년 만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일 년 동안 강렬한 태양과 만성적인 갈증에 시달린 탓에 거의 눈이 멀다시피 했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오랜만에 실컷 물을 마시고 나자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왔다. 그건 또 한 번 물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다가는 모두 죽고 말 거라는 깨닫음이었다. 비가 그치자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학교 운동장에 모여들었다. 함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됐다. 조직이 만들어지고 규칙이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에게 역할이 부여되고 책임이 지워졌다. 그것이 첫 번째 마을 전체 회의였다. 살고 있는 도시 밖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모두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지옥을 스스로 걷어낸 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것에 감사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비가 내리는 목마른 평화가 시작됐고, 그렇게 100년이 흘렀다.
건물은 무너지고 터만 남은 학교 운동장에 500명의 주민들이 모여 앉아 촌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건 단순한 선글라스가 아니라는 걸 모두 잘 알 거요.”
촌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100년 전 더 이상 우리 눈으로 쏟아지는 햇볕을 가릴 필요가 없어져 이 물건을 모두 폐기했소. 그런데 3일 전 갑자기 나타난 거지.”
촌장은 둥글게 모여 앉은 사람들 가운데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지난 100년 동안 모든 것을 함께 관리하고 나눠 써왔소. 나만의 것이라는 게 없었지.”
촌장은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이걸 누군가 몰래 가지고 있다가 떨어뜨렸다고 한다면, 먼저, 개인 소유 금지 규칙을 어긴 것… 더 큰 문제는 혹시 이런 물건이 필요한 누군가나 뭔가를 감춰두고 있었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촌장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촌장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100년 전 폐기 할 때 빠뜨렸던 것인가… 아시다시피 대 가뭄의 시기에 이런 물건이 100년 동안 온전할 수는 없다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그러니 이것도 우리가 찾는 답은 아닐 것인데… 그렇다면 남은 건….”
촌장의 말을 끊고 젊은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그건 마을 밖에서 온 거예요! 마을 밖에도 우리처럼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다고요! 틀림없이!”
‘건'이었다. 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하면 처벌을 받게 될 거라고 경고했던 것 기억하느냐?”
촌장의 말에 노기가 서렸다.
“촌장님, 그래도 이건 분명히!”
촌장은 건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만! 우리에게 다른 가능성은 없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런데 마을 밖에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건 대 가뭄의 시대를 견뎌내고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사람들을 집 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겁쟁이라고, 멍청이라고 비웃고 조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정녕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게냐?”
당황한 건이 말했다.
“촌장님, 저는 단지 또 다른 마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
“닥쳐라! 너의 그 허무맹랑한 소리에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여기 모인 500명의 사람들은 너의 헛된 말을 그동안 너그러운 마음으로 견뎌왔다. 너도 우리의 일원이니까. 하지만 어땠느냐? 너는 사람들의 믿음과 진심을 조롱했다.”
촌장의 추궁에 건이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기억하느냐? 뜨거운 물로 풍요의 시대처럼 기계를 움직이겠다고 했던 것? 너의 그 헛된 장난에 한 달 분의 물만 낭비했지. 그것뿐이었느냐? 물을 가지고 다니기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말에 홀려 천금 같은 물을 흙이며 모래, 천에 적셨다가 잃게 되었던 일 또한 모든 사람들이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잠자코 서 있던 건이 바닥에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조롱할 마음 따윈 없었습니다. 저도 왜 그런 생각이 드는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실패하더라도 이제까지 우리가 몰랐던 것을 알려 줄 수도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혹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을 뿐입니다.”
촌장은 단칼에 건의 말을 잘랐다.
“지금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사람들에게 볼 수도 없는 희망을 주입해서 현실을 낭비하고 부정하고 비참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죄악이다. 넌 그 죄악의 선동자고.”
촌장의 말이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저 선글라스는 조상님들의 시험이다! 살려고 하는 우리의 절실함, 진실함을 알아보려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 저 저주받은 옛 시대의 물건을 버려야 한다. 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우린 끝이다!”
촌장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건 쪽을 가리켰다.
“저자를 가둬라. 모든 분란의 씨앗이 된 저 물건도 함께. 가까이 가는 자, 도움을 주는 자는 저자와 같은 운명이 된다. 3일이다. 3일 후에도 살아 있다면 시험을 통과한 것으로 간주해 다시 받아주겠다.”
마을 밖 황무지. 건은 황무지의 모래 바람이 그대로 쏟아지는 강철 케이지에 갇혔다. 옆에는 문제의 선글라스가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꿈인지 상상인지도 구분되지 않는 어렴풋한 기억이었다. 물로 움직이는 기계도, 손쉽게 물을 운반하는 방법들도. 건이 골치 아픈 문제아로 낙인찍힌 건 바로 이런 기억들 때문이었다. 무시하고 넘어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흐리멍덩한 기억들. 그 기억이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아 저지르고 또 저질렀던 것이 결국 이런 결말을 맺게 된 셈이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이상한 기억들이 떠오른 것일까?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만. 모래 먼지가 코 앞도 못 알아볼 만큼 짙게 깔렸다. 무언가 육중한 것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서서히 정신을 잃고 있던 건은 그것이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날카로운 빛이 건의 눈을 찔러댔다. 낯설고 묘한 억양의 말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그래도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근데 여기는 지옥일까 천국일까?
축구장 만한 수족관을 비추는 모니터 앞에 모인 사람들이 떠들어댔다. 모니터 안에는 사람들의 유전자를 복제해 크기를 작게 만든 미니어처 인간들이 개미들처럼 꼬물거리고 있었다.
“너무 오래 갈증 상황에서 지낸 탓이야.”
“갈증이 호기심을 압도해 버린 거지.”
“그래도 이 정도면 뭔가 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고. 어쩐지 이번에는 시시한걸.”
“하루 이틀이야? 이것들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딱 그만큼만 할 뿐이지.”
“쟤는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말 그대로 폐기 처분된 거지.”
“좀 불쌍하잖아. 우리가 시킨 대로 잘 따라줬는데…”
“이건 어때?” “오,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올랐나 본데. 뭐야?” “3일 후에 다시 돌려보내는 거야.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하지 않아?”
“그거 괜찮다. 재미있겠어. 죽은 줄 알았던 애가 다시 돌아간다! 좋아 좋아!”
“이번엔 골치 아픈 물건이나 뭐 그런 건 빼고 딱 얘만, 건강하게. 알겠지?”
“난 이번에는 도시 밖으로 나간다에 걸래.”
“나도, 나도!”
“난 아니다에 한표. 이제 겨우 100년이야. 이것들은 아직 멀었어. 뭔가 액티브해지려면… 차라리 홍수라면 모를까…”
“아, 이 의외성! 이것 때문에 내가 이 Thirsty Game을 못 끊는다니까.”
거대한 집게가 몽롱한 상태의 건을 집어 올려 옆의 수조로 조심조심 옮겼다. 몸이 내려진 곳은 상쾌하고 신선한 물 냄새가 물씬 풍겼다. 눈앞의 빛은 여전히 밝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건은 기도했다. 이번 꿈에서는 영영 깨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 특별히 한 줄 요약 해드림
: 목마름이 우리를 구원할까? 비가 우리를 구원할까?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항상 파멸을 선택하지.
* '오늘비'의 뱀발 한뼘
: 장마가 시작됐다. 에어컨이 고장 났다. 끈적인다. 축축하다. 여름이 가기 전에 고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