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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비 Oct 13. 2024

최후의 격돌

강화도 마니산에서 ‘탐’과 만나기로 한 날. 지은 씨와 함께 제주 공항에서 김포행 첫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포공항에 도착해 주차장에서 예약해 둔 공유 승용차를 찾았다. 지은 씨가 운전대를 잡았다. 가방에 넣어 온 백이의 유골함을 조심스럽게 뒷자리에 실었다. 서울로 쏟아져 들어가는 차들을 거슬러 일산으로 들어섰다. 골목을 돌아 며칠간 비워둔 아버지 집에 들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길이 닿았던 문과 가구들은 그대로였다. 주인 잃고 온기 잃은 물건들은 푸석푸석했다. 감상에 젖어 있을 틈이 없었다. 신발장에서 아버지의 작업도구함을 꺼냈다. 그 안에서 손전등, 밧줄, 망치 따위 물건들을 챙겨 가방에 집어넣었다. 완력이 센 ‘탐’을 상대하려면 맨손보다는 무기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물건을 챙기는 사이 차에 남아 있던 지은 씨는 스마트폰으로 마니산 등산로를 검색했다. 물건과 청동검을 넣은 가방을 트렁크에 싣고 조수석에 앉았다. 지은 씨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참성단까지 가는 길은 네 개네요. 주차장 쪽에서 올라가는 길이 두 개, 함허동천 쪽이 하나, 정수사 쪽이 나머지 하나예요. 그중에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계단로가 제일 시간이 적게 걸려요.”

가만히 들여다보던 내가 대답했다.

“제일 빠른 계단로로 갈까요? 지은 씨 생각은 어때요?”

고개를 끄덕하던 지은 씨가 뒷자리를 돌아보고 물었다.

“풍백도 함께 가나요?”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요….”

집 앞 골목을 빠져나온 승용차는 일산대교를 건너고 김포한강 신도시를 가르며 달렸다.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들어선 우리는 해안남로를 타고 동막해수욕장 공용주차장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었다. 새벽부터 비행기를 타느라 끼니를 거른 탓에 문을 연 식당을 찾아 들어가 허겁지겁 바지락 칼국수를 주문해 먹어 치웠다. 식당을 나선 우리는 편의점에서 커피 두 잔을 사서 백사장을 둘러싼 계단식 스탠드에 앉았다. 찰랑거리는 파도, 끼룩거리는 갈매기, 간간이 오가는 사람들과 자동차들. 평일 오전의 바닷가는 더없이 한가롭고 평온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사라지는 한바탕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 갈까요?”

지은 씨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스마트폰 시계는 벌써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동막해수욕장 주차장을 출발해 30분쯤 달린 자동차가 마니산공영주차장으로 들어섰다. 평일 오후의 주차장은 한산했다. 주차장 구석에 차를 대고 트렁크에서 청동검과 집에서 챙겨 온 물건이 든 가방을 챙겼다. 차 뒷자리의 풍백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 포장된 길 끝에 매표소가 있었다. 차량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매표소 앞에는 등산복을 입고 사파리 모자를 쓴 남자가 서 있었다. 옆에서 걷고 있는 지은 씨를 돌아봤다. 지은 씨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끄덕해 보였다.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남자가 다가와 한쪽 팔을 들어 우리를 제지했다.

“혼자 가셔야 합니다. 보관자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지은 씨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아저씨가 뭔데 가라 마라에요?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아저씨 경찰이야? 깡패야? 아님 뭐야?”

남자는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저는 신단을 지키는 자일뿐입니다. 이 문제는 저분들끼리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같이 간다고 해도 보관자는 끼어들 수 없습니다.”

말을 끝낸 남자가 눈짓을 하자 매표소 뒤쪽에서 비슷한 복장을 한 건장한 남자 세 명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한번 더 발끈하려는 지은 씨의 팔을 붙잡았다.

“저 사람 말이 맞아요. 저 혼자 가서 해결해야 해요. 걱정 마세요.”

지은 씨가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세 명의 남자들이 지은 씨를 호위해 주차장 쪽으로 내려갔다. 돌아보는 지은 씨를 향해 걱정 말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보관자는 걱정 마십시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이제 올라가십시오.”

바리케이드를 지나 한 걸음 내딛자 지은 씨를 막아섰던 남자가 뒤에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가방을 짊어진 채 등산로 초입에 있는 천부인 광장과 참성단조형물을 지나 단군로와의 갈림길에서 왼쪽 계단로로 들어섰다. 개미허리와 헐떡고개를 지나 한 시간쯤 산길을 올랐다. 생수를 마시며 돌아보니 등 뒤로 바다와 섬의 논밭, 집들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살아서 볼 마지막 풍경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비장해졌다.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철망이 둘러쳐진 참성단이 나타났다. 참성단으로 들어가는 문은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약속된 4시까지 남은 시간은 10여분. 잠긴 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자니 70미터쯤 떨어진 마니산 정상의 작은 초소에서 누군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산길을 따라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노인의 목에는 ‘문화재 관리인’이라고 적힌 신분증이 걸려 있었다.

“저기, 어르신. 참성단에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 미처 끝나지도 않았는데 노인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풀고 참성단으로 올라가는 문을 열었다.

“고, 고맙습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노인이 계단을 오르는 내 뒤에 대고 수수께끼 같은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믿어요. 자신을. 가지려고 하지 말고. 다녀오시오. 산 아래에서, 봅시다.”

노인의 말을 뒤로하고 계단을 올라 참성단 안으로 들어서니 오른편에 산사나무가 있었다. 산사나무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출입금지 팻말이 서 있는 계단 끝 제단 상부에 ‘탐’이 서 있었다. 나를 발견한 ‘탐’이 제단 상부로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제단 상부에 올라서니 마니산과 강화도가 저 멀리 발아래로 내려다 보였다. 노인이 나왔던 정상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석모도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탐’은 벽도, 난간도 없는 제단 한가운데서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바다를 보고 서 있었다. 서 있는 자리 앞에는 제주도에서 가져간 방울과 청동거울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녀석 일은 유감.”

바다 쪽을 쳐다보고 있던 ‘탐’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사람을 죽여놓고 유감이라고?”
“뭘 그리 정색을 해. 소모품 하나 가지고. 새로운 세상을 열려면 어쩔 수 없지. 필요하면 하나가 아니라 백 명, 천 명, 아니 그 이상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소모품은 널리고 널렸잖아.”
“풍백이가 소모품이었으면, 그럼 넌 뭐냐?”

격앙된 물음에 탐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세상을 가질 자격을 타고난 사람! 우린 그런 사람들이잖아!”
“지랄마. 세상을 가질 자격 같은 게 어딨어? 내가 보기에 넌 … 음, 그냥 맛이 많이 간 쓰레기야.”

내가 있는 쪽으로 몸을 돌린 탐이 한 걸음 다가왔다.

“쓰레기… 하… 정말 기가 막힌다. 너 때문에 세상이 요 모양 이 꼴인걸 몰라? 네가 이렇게 나 몰라라 하고 자빠져서 시답지 않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까 꼴 같잖은 것들이 설치는 거잖아. 이건 무책임이 아니라 죄야. 책임을 외면하고 세상과 사람들을 방치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알아?”
“죄는 무슨… 정신 차려. 아무도 우리한테 세상을 구하라고 한 적 없어! 왜 혼자서 열폭하고 지랄이야.”

지랄이라는 말에 얼굴을 찌푸린 탐이 양손을 벌리고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누가 시켜서 하니? 내가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거야! 내가! 이 세상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 하는 거라고!”

탐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슬그머니 뒷짐을 지듯 손을 바지 뒷춤으로 옮겼다. 참성단 계단을 올라올 때 챙긴 망치가 손 끝에 느껴졌다.

“와, 착각 오지네. 솔직하게 말해. 그냥 니가 짱 먹고 싶은 거잖아. 아니야? 거기다가 새로운 세상을 여네 마네, 자격이 있네 없네 같은 되지도 않는 말 갖다 붙이지 좀 마. 진짜 세상을 걱정하는 거라면, 너한테만 좋은 거 말고 모두한테 도움이 될 만한 거, 모두에게 필요한 걸 하라고!”

탐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두 걸음만 더 다가오면 코 앞이다.

“우리 아버지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무능한 인간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 같이 똑같냐. 할아버지 말씀 그대로야. 멍청하고 어설프고 무책임하다고….”

점퍼 뒷자락으로 슬며시 손을 집어넣었다. 쇠로 된 망치 머리의 차갑고 까칠한 느낌이 손 끝에 전해왔다. 손가락 끝으로 살금살금 망치 손잡이를 끄집어냈다.

“니네 아버지… 가만있어봐… 너랑 나랑 6촌이라 그랬으니까… 5촌 당숙이네. 당숙은 그래도 제정신 박힌 분이셨네. 작은할아버지는 아닌 것 같지만. 너 작은할아버지 믿고 당숙한테 반항하는 중이냐? 잘해봐라. 파이팅!”

탐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이제 한 걸음 남았다.

“마음대로 지껄여봐. 그래봐야 너나 우리 아버지는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변명만 늘어놓는 약해빠진 패배자들일뿐이니까. 지금 설쳐대는 꼴 같잖은 것들 싹 다 쓸어내고, 원래 우리 것이었던 이 세상을 내가 다시 열 거야. 니들이 포기한 자격을 내가 기꺼이 짊어지고 말이야. 하지만 그 세상에 니들 자리는 없을 거야. 장담하지.”
 
망치를 꺼내는 속도보다 탐의 발이 날아오는 속도가 더 빨랐다. 배를 차인 나는 숨이 막혀 신음소리도 내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해 지는 저녁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노란 하늘을 가르고 시커먼 것이 날아왔다. 탐의 발이었다. 눈을 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축구공처럼 얼굴을 채이는 순간 모든 소리와 빛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막혔던 숨이 돌아오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동시에 지독한 아픔이 얼굴과 머릿속을 강타했다. 신음소리를 내며 간신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제단 가운데 서 있는 탐이 내가 매고 왔던 가방을 뒤져 청동검을 꺼내고 있었다. 뒤춤에 감췄던 망치는 서너 걸음 옆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망치를 집기 위해 한 걸음 내딛자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무릎을 꿇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그거, 손대지 마!”

탐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깼어? 무리하지 마. 넘어져서 저 아래로 떨어지면 말짱 꽝이다. 아휴, 이제 다 됐다.”

탐이 내가 주저앉아 있는 쪽으로 걸아왔다. 또 발이 날아올까 싶어 움찔하며 몸을 숙였다.

“쫄기는….”

탐은 나를 지나쳐 망치가 떨어진 쪽으로 갔다. 그리고 망치를 발로 찼다. 망치는 날아가 제단 하부 산사나무 앞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내 앞으로 다가왔다. 한쪽 발을 잡고 끌어당겼다. 나는 짐짝처럼 질질 끌려 제단 한쪽에 놓였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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