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이 제단의 왼쪽 모서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바닥에 놓여 있던 물건을 집어 올렸다. ‘딸랑~’ 청명한 방울 소리가 들렸다. 탐은 왼쪽 하늘을 바라보며 방울을 머리 위로 쳐들고 천천히 흔들었다. 방울 소리가 바람을 타고 해지는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세 번 반복한 후 방울을 다시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이번에는 오른쪽 모서리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삼재를 가지고 있으면 다 된 걸까? 그럴 리가, 그렇게 간단할 리가. 그럼 뭐가 필요할까?”
탐은 오른쪽 모서리에 놓여 있던 청동거울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청동거울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하늘을 향해 빛은 반사하듯 비췄다. 그렇게 하기를 세 번. 일을 마친 탐은 다시 청동거울을 바닥에 내려놨다.
“힘을 불러내야지. 어떻게? 지금 보고 있는 것처럼.”
말을 멈춘 탐이 이번에는 정면 모서리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내 가방에서 꺼낸 청동검이 놓여 있었다. 탐은 청동검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머리 위로 찌르듯이 들어 올렸다. 잠시 멈췄던 탐이 머리 위에서부터 바닥까지 정면을 베듯이 천천히 그어 내렸다. 다시 머리 위로 검을 추켜올린 다음 이번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사선으로 천천히 그어 내렸다. 그리고 다음에는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일을 마친 탐이 청동검을 든 채로 내게 다가왔다.
“이 방법, 니 책에는 없었어. 우리 집안에 전해진 책에만 있었지. 그래서 긴가민가 했어. 제주도에서 걔, 풍백? 걔가 가지고 있던 책에도 똑같은 내용이 쓰여 있는 걸 보고 확신했지. 숨겨진 비밀이었구나 하고. ‘이걸 어떻게 말하지? 다른 방법은 없나? 왜 왕검님 책에는 없지?’ 이런 메모가 있는 걸 보고 틀림없다고 생각했지. 아마 너네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차마 알려줄 수가 없어서, 알려줄 필요가 없어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을 거야. 세상을 다시 손에 넣을 마음도, 기대도 없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하여튼 무능한 것들.”
탐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이 간신히 무릎을 짚고 일어설 수 있었다. 탐이 청동검을 든 채로 내 앞에 마주 섰다. 고개를 들고 탐의 눈을 쏘아보았다. 탐은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비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를 악물고 한 마디 한 마디를 뱉어냈다.
“내, 내가… 삼재를 갖고… 세상을 열고… 그럴만한 인간은 못 되는 거 잘 알아. 그런데 … 이건… 할 수 있을 거 같아. 너도… 그걸 갖지 못하게… 하는 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던 탐이 정색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 오른쪽 어깨에 왼손을 올렸다.
“알았어, 알았어. 쉿! 쉿! 자,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야. 잘 봐.”
뭉툭한 충격과 함께 배에서 시작된 타는 듯한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니 청동검이 배에 박혀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이 한번 더 힘껏 내 몸속으로 청동검을 밀어 넣었다. 다시 한번 숨이 막혔다. 가만히 내 눈을 바라고 있던 탐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같은 환웅의 자손 한 사람이 희생되어야 힘이 소환되고 완성되는 거더라고. 가족을 희생시킬 만큼의 각오와 결심, 의지와 확신이 있어야 힘을 쓸 자격을 얻게 되는 거지. 정말 대단하지 않아? 우리 조상들?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사람들을 희생해도 된다고 했던 내 말 기억하지? 그건 내가 진짜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거야. 알아듣겠어? 내가 진짜였다고! 넌 나를 위해 모든 걸 준비하고 이렇게 사라질 소모품이었고!”
탐이 배에 박혀 있던 청동검을 빼냈다. 그리고 한 발 물러섰다. 나를 지탱하던 탐의 힘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움켜쥔 배에서는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입으로는 울컥 피가 역류해 올라왔다. 청동검이 놓여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탐의 뒷모습이 보였다. 탐이 바닥에 청동검을 내려놨다. 그리고 제단 한가운데로 돌아와 나를 등지고 섰다. 탐이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바닥에 놓여 있던 보물에서 투명한 기운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세 가닥의 기운이 제단 하늘 위에서 엉키고 있었다. 탐이 팔을 벌린 채로 나를 향해 돌아섰다. 탐은 웃고 있었다. 탐의 머리 위에서 엉켜있던 기운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탐이 고개를 젖혀 그 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탐의 머리 위로 투명한 기운이 쏟아져내렸다.
“아… 안돼… 안돼…!”
왼손을 뻗어 허공에 휘저으며 소리를 질렀다. 울컥! 또 한 번 피가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눈에서는 주먹만 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눈물에 굴절된 탐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다 끝났다. 이제 다 끝났어. 풍백아 미안하다. 지은 씨 미안해요. 아버지… 저란 놈은 어쩔 수 없나 봐요.
“뭐, 뭐야! 왜, 왜 이래! 그만, 그만!”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두 팔을 벌리고 서서 쏟아져 내리는 투명한 기운을 받고 있던 탐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투명한 기운은 갈수록 더 거세게 쏟아지고 있었다. 활짝 웃던 탐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두 팔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쏟아지는 기운을 막아보려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기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탐이 무릎을 꺾고 바닥에 꿇어앉았다. 분노와 고통이 얼굴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 얼굴로 탐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점점 거세지던 투명한 기운이 제단 상부를 가득 채울 만큼 거대해져 한꺼번에 탐의 머리 위에 쏟아졌다. 나도 모르게 배를 움켜쥐지 않은 왼쪽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으, 으악!”
무릎을 바닥에 댄 채로 양팔을 하늘을 향해 벌리고 있던 탐의 몸뚱이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것처럼 출렁거렸다. 탐의 몸으로 쏟아졌던 투명한 기운들이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몸에 쏟아지던 기운이 모두 물러나자 탐의 두 팔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헝겊인형처럼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가 굳어버린 듯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때였다. 하늘로 솟구친 채로 멈춰 있던 투명 기운이 다시 아래로 내려 꽂히기 시작했다. 기운은 탐이 서 있던 자리를 지나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제 나도 끝이로구나.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에서 시작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나는구나. 가물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달려드는 기운을 똑바로 쳐다봤다. 셋, 둘, 하나! 날아오던 기운이 속도를 더욱 높여 내 몸을 관통했다. 서늘하면서도 따스했다. 기운의 속도에 밀린 몸이 제단 상부에서 제단 하부로 굴러 떨어졌다. 서서히 좁아지는 시야에 탐이 발로 찼던 망치와 이제는 검은 실루엣만 남은 산사나무가 보였다. 모두 안녕. 암전이었다.
흙냄새에 눈을 떴다. 잠이 들었었나? 고개들 들어 사방을 살폈다. 참성단 제단 하부 바닥에 누워있었다. 주변은 어두웠다. 하지만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었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낮은 제단 하부의 벽 너머 산 아래쪽과 바다 건너에 불빛들이 보였다. 가로등, 가게, 자동차에서 나오는 불빛. 평범하고 익숙한 풍경이지만 산 꼭대기에서 보는 탓인지 낯설고 어색했다. 내가 여기에 왜 왔더라? 맞다! 삼재! 탐! 제단 상부로 이어진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러다가 문득 멈춰 섰다. 그리고 팔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봤다. 웃옷을 들어 올려 배도 만져봤다. 머리도 좌우로 흔들어봤다. 말짱했다. 오히려 더 팔팔해진 것 같았다. 발에 차이고, 칼에 찔리고, 굴러 떨어지고…. 모두 내가 꿈을 꾼 건가? 제단에 올라보니 바닥에 쓰러져 있는 탐이 보였다. 꿈이 아니었다. 탐 옆에는 청동검과 공구를 넣어 왔던 내 가방이 널브러져 있었다. 가방을 뒤져 손전등을 꺼내 탐에게 비췄다. 탐의 눈은 굳게 감겨 있었다. 코에 귀를 가져다댔다. 아무 소리도 느낌도 나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 때문에 더욱 창백해 보이는 탐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손전등 불빛을 돌려 제단 사방에 놓여 있던 보물들을 찾았다. 보물들은 불에 탄 것처럼 모두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방울은 둔탁한 덜그럭 소리를 냈다. 청동거울은 깨지고 찌그러져 있었다. 청동검은 칼날이 반으로 부러져 있었다. 그것들은 더 이상 보물이 아니었다. 망가진 보물들을 모두 가방에 집어넣고 제단 하부로 내려왔다. 산사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던 망치까지 챙겨 넣었다. 왼쪽으로 꺾어진 통로로 들어서자 작은 손전등 불빛 크기만큼의 계단이 나타났다.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한 채 제단 상부 쪽을 돌아봤다. 발길을 돌렸다. 제단 상부에 올라 탐의 시신을 둘러업었다. 가방 속에 넣어왔던 밧줄로 미끄러지지 않게 몸에 묶었다. 가방을 한 손에 끼고 조심조심 제단 하부로 내려왔다. 아직까지 열려 있던 참성단 입구 문을 살짝 밀어 닫았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접시만 한 크기의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아래에 있던 불빛들이 눈높이까지 올라왔을 때 가파른 산길과 계단이 끝나고 포장된 길이 나타났다. 늦은 시간이라 등산로 초입을 오가는 사람은 없었다. 매표소 밖 주차장 근처에 있던 식당과 카페도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저 앞에 천부인광장 안내판 옆에 서 있던 조형물의 실루엣이 보였다. 조형물을 지나자 매표소 건물이 보였다. 건물 앞에는 한 사람이 서성이고 있었다. 그 옆에 구부정한 그림자도 보였다. 지은 씨와 참성단 문을 열어준 문화재 관리원 어르신이었다. 입구 쪽에 가까이 가자 지은 씨가 알아보고 달려왔다. 하지만 내 등에 탐이 업혀 있는 것을 보고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침착한 것은 문화재 관리원 어르신이었다. 어르신은 나와 탐을 묶은 밧줄을 풀고 탐의 시신을 받아 매표소 앞마당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놀란 지은 씨가 물었다. 어르신은 침착하게 탐의 시신을 살피며 수습하고 있었다.
“복잡하고 길어요. 이해 안 되는 것도 있고요.”
탐의 시신을 가지런히 정리한 노인이 천천히 일어나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봉인이었을 겁니다.”
“봉인이요?”
노인의 말에 나도 지은 씨도 놀라 동시에 되물었다. 노인은 우리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삼재는 어떻게 됐습니까?”
팔에 끼고 온 가방을 앞으로 내밀며 대답했다.
“새까맣게 타버렸어요. 모두.”
노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격 없는 자가 탐을 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지은 씨가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다시 물었다.
“어르신, 좀 전에 말씀하신 봉인이라는 게….”
노인이 바닥에 지은 씨를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탐욕스러운 자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고 삼재를 숨겼는데, 지켜야 할 자들이 욕심을 부리니 어떻게 하겠소?”
말을 멈춘 노인이 탐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가문의 한 사람을 희생해야 한다는 말을 흘렸지. 사실은 달랐어. 욕심에 눈이 멀어 그 말을 믿고 따라 하는 자는 저주를 작동시키게 되고 결국 죽게 되지. 이 남자처럼 말이오. 삼재는 다시 숨어버리는 거고. 제법 괜찮은 봉인 아니오?”
노인이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살아온 것을 보니… 가지려고 하지 않았구려.”
지은 씨가 노인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섰다.
“어르신은 도대체 이런 걸 다 어떻게 알고 계시는 거예요? 아까 매표소에 있던 남자들처럼 신단 지킴이… 뭐 그런 거예요?”
여전히 노인은 우리를 등지고 서 있었다.
“지킴이는 무슨… 죄 값을 치르는 거지….”
말 끝을 흐리는 노인의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노인이 탐의 시신 옆으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탐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노인의 어깨가 더 크게 들썩였다. 나와 지은 씨는 가방을 챙겨 조용히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인의 숨 죽인 흐느낌이 밤공기를 뚫고 주차장에 퍼졌다. 승용차 뒷자리, 풍백은 그대로 있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차장을 떠났다.
지은 씨가 김포공항 공유 승용차 지정 주차구역에 차를 세웠다. 한 밤중이지만 공항은 분주했다. 마니산 공영주차장을 출발 한 이후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도 지은 씨는 아무 말이 없었다. 참성단에서 탐을 죽게 만든 투명한 기운이 내 몸을 관통했을 때, 칼에 찔린 상처가 사라지고 멀쩡히 살아났을 때 이미 알아챘어야 했다. 삼재의 힘이 내 몸에 들어왔다는 걸. 양 팔목의 안쪽과 뒷 목이 새삼 화끈거렸다.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삼재는 해결책이 아니었어요.”
아무 말 없이 앞만 보고 있던 지은 씨가 뜬금없는 말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출발점일 뿐이지….”
조용히 듣고 있던 지은 씨가 보일락 말락 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떻게 갈지는 모르겠어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끝까지 쉬지 않고 달려보려고요.”
고개를 끄덕이던 지은 씨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어딘지는 알겠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어요.”
지은 씨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방을 챙겨 들고 승용차 조수석에서 내렸다. 뒷문을 열고 풍백의 유골함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지은 씨가 밖으로 나왔다. 나는 지은 씨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곧 찾아갈게요. 몸 조심해요.”
인사를 마치고 풍백의 유골함을 꼭 끌어안은 채 성큼성큼 걸었다. 뒤돌아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지은 씨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