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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저의 삶을 소개합니다.

by 발견씨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다니, 부럽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그들은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삶을 그렇게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은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제 삶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낭떠러지 앞에서 시작된 삶


스무 살 3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체대 입시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틀 만에 체대가 제게 맞지 않는 곳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 그려왔던 길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듯했습니다.


저는 낭떠러지로 걸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방 안에 갇혀 고민했고,

깊은 고민 끝에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방 안에서의 결심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특기인 운동을 살려 다음 단계를 구체적으로 계획했지만,

알고 보니, 저는 혼자 운동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운동과 함께 취미로 다녔던 실용음악학원에 매일 혼자 있는 것은 괜찮았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큰 결심 없이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를 모르는 삶


"대중음악을 만들어서 돈 많이 벌자!"

자신 있던 다짐이었지만, 이 결심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교수님께서 프로 작곡가와 작업할 기회를 주신 덕분에

제가 제 이야기를 남에게 주기 싫어하는,

'고집스러운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제 이름으로 음원을 발매했습니다.

학교 다니며 발매한 음원이 스무 곡 남짓 되었기에,

계속 이렇게 나아간다면 그럭저럭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렇게 살기가 싫어졌습니다.


그 이후에는 작가 생활을 꿈꾸며 종일 글만 쓰기도 하고,

크리에이터의 삶을 꿈꾸며 유튜브와 팟캐스트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로 들어간 콘텐츠 회사에서 정규직이 되어 PD의 삶을 꿈꾸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꿈을 거치며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나'는 곧 '내가 모르는 나'라는 것입니다.

제가 꿈꿨던 삶 중에 '진짜' 제가 원하는 꿈은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하고 싶은 일과 다짐은 늘 따로 있었고,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부러진 적도 많았습니다.


체대 자퇴는 용기가 아니라, 부모님의 소중한 돈을 날리는 선택이었습니다.

음악은 시작이 늦었다는 강박을 제게 안겨주었고,

그 강박은 친구들과의 시간을 사치로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작업실에서 써 내려간 가사들에는 외로움이 가득했으며,

아무도 모르는 음악과 글을 써가며 오히려 더 고독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모든 시간을 진심으로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하루하루 성장했고, 성숙해져 갔습니다.

매일 스스로를 위로하며 저 자신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저를 위해 나아가는 힘을 길렀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에 한 발 가까워졌다고 느낍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모든 좌절을 받아들이고, 계속 다시 걸으세요.
오늘의 시행착오를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의 삶과 마음가짐을 이 정도만 소개하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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