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걸리면 약도 없다는 그 병
열 여섯.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를 보며 이 세상을 사는 데에는 일정한 '지침' 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을 보라고 만든 그 책을 읽고 저는 저부터 보기 시작한 듯 합니다. 그 지침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방법을 찾다보니 자연스레 읽게된 것이 자기계발서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자기계발서라는 생각도 못했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라는 책 제목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 7가지가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도 안나지만요.
이 병이 심화된 것은 20대에 어떤 책 두 권을 읽고 나서입니다. 그 책의 구체적인 제목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제 글을 읽고 병이 심해질 것을 두려워하여 그 책을 보지 않기로 한다면 그 책의 저자분께 너무나 죄송한 일이니까요. 음... 너는 알고 나는 모르는 '비밀'과 '꿈꾸러 올라가는 다락방' 정도로 해두죠.
흔들리는 기찻간에서 읽던 그 '비밀'스런 책 속에 나온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저를 책 속으로 끌어당겼습니다. '맙소사. 나만 모르고 있었던거야? 이 법칙들을?' 그 날 두 시간여에 걸쳐 책을 단숨에 다 읽었을 때쯤 무릎과 이마가 꽤 아팠습니다. 저는 뭔가를 깨닫거나 안타까운 일이 발생할때면 무릎이나 이마를 손바닥으로 세게 탁 치는 습관이 있거든요. 세상 사람들이 나만 빼고 벌써 책에 소개된 법칙들을 다 알고 써먹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계발의 신세계를 발견한 기분이었죠. 하지만 그 신세계는 기차에서 내려 친구를 만남과 동시에 사라졌습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그 법칙들을 상기시키려는 듯 어느 날 홀연히 내 눈앞에 나타난 다락방. 자기계발서깨나 읽었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보았을법한 그 다락방. 그 방은 제가 이 모진 병에서 헤어나올 수 없도록 한 일등 공신입니다. 게다가 그 후 릴레이하듯 이어진 온갖 자기계발서의 향연의 포문을 열어준 책이기도 하지요. 아직도 그 책만 보면 손이 후들후들 합니다. 아직 보신적이 없다고요? 가능하면 펼치지 않을 것을 권합니다. 빠져나오지 못할 테니까요.
책을 읽고 책에서 배운 것을 얼마간 실천하다 흐지부지 될 때쯤 새로운 책이 등장하고 또 다시 홀린 듯 그 책을 펼쳐들면 이전에는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그 세상에 빠져 책이 시키는 것을 하며 지냈습니다. 이미 그 때부터 병은 계속 깊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떠들썩한 이 시기에 '병'이야기를 하는 것이 영 껄끄럽지만 지금 저의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막상 병이라고 생각하고 보니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어느새 저와 비슷한 증세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그들은 어떻게 지내나 살펴보게 되더군요.
나와 그들을 관찰하며 이 병의 대표 증상을 추려보았습니다. 증상에 따른 처방도 찾아 보았습니다. 여러 처방을 시도하다보니 이 병을 극복할 방법의 가닥을 잡은 것 같아요. 온갖 계발을 일삼느라 쳐다보지도 않던 것을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치료제라고 생각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은 만병통치약이었어요. 혹시 압니까? 제가 제안해 드리는 그 약을 꾸준히 복용하다보면 결국에는 이 '자기계발'이라는 망망대해를 건너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는지.
그 약을 찾기까지 제가 겪은 병 주고 약 주는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나의 병, 그리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당신의 병을 기똥차게 낫게 해 줄 약이기를 바라며 이 고질병의 진단과 치료를 시작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