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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Oct 26. 2020

비전맵 원형탈모증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상상하느라 머리에 쥐가 난다

비전맵 원형탈모증 : 목표를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떠올리는데 온 힘을 쓰느라 미처 머리털은 사수하지 못한 현상



흰 종이를 테이블 한 가운데 펼치고 좌우로는 온갖 컬러의 색연필과 보드마카를 준비한다. 잡지며 인터넷에서 찾은 여러 이미지들이 종이 위로 어지럽게 쏟아진다. 여러 이미지 중 미래에 자신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을 중앙에 두고 중심 이미지 주변으로  더불어 바라는 이상향을 나열한다. 어설프나마 맵(map)의 형상을 갖춘 이것의 이름은 비전맵. 만들고 난 후 찾아오는 뿌듯함도 잠시. 매일, 생생하게 이 이미지들을 떠올려야 한다는데. 너무...... 많이 붙였나?




비전맵, 드림보드, 보물지도...모두 목표의 시각화를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표현은 다양하나 이들이 뜻하는 바는 동일합니다. 바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시각화하여 이미 그 일이 이루어진것 처럼 상상할 것'입니다. 상상의 결과가 기적처럼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이므로 그저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목표를 그려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죠.


실상 이것이 뜬구름 잡는 소리냐하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에요. 우리 뇌에는 망상 활성계(reticular activating system)라는 부분이 있어 사물과 현상을 통해 얻어지는 감각 정보를 대뇌로 전달한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는 각 개인이 세상을 보는 눈, 즉 프레임을 형성하고 이에 맞추어 상황을 만들어내거나 재정립하는 일을 담당한다고 하네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목표를, 그러니까 나의 꿈을 말 그대로 '상상'해봅니다. 노트에 목표를 적어야 한다고 하니 일단 적어 보고요. 리스트로 나열한 목표는 이미지로 옮기라고 하니 또 그 이미지들을 열심히 찾아서 보드판에 이리저리 붙여봅니다. 더 나아가 보드판은 휴대가 어려우니 이번엔 아예 사진으로 찍어 폰에 배경화면으로 넣어둬요. 생생하게 눈에 그리듯 목표를 꿈꾸려면 자주 보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머리로 이해했으니 몸으로도 실천을 하고 싶어 열심히 따라해 보는데 꿈을 꿈꾸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입니다. 스트레스가 주 원인이라는 원형탈모증이 온대도 이상할 것이 없어요.


'꿈을 꿈꾼다'라...... 어딘지 거울속의 거울, 또 그 안에 거울을 보는 듯 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무심히 들여다 본 거울 속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 기분이랄까요. 막상 여러 개로 겹친 내 모습을 보니 그 끝을 보고싶어 몸을 이리저리 틀어보지만 결국은 수십개의 나의 모습만 확인하고 맙니다. 거울 속을 살피던 눈을 거둬 다시 엘리베이터 문을 쳐다볼 때에는 막연함마저 느껴집니다.


엘리베이터를 내리려다 말고 문득 거울로 다시 눈이 갑니다. 그 곳에는 알 수 없는 끝을 보느라 놓쳐버린 내 얼굴이 있습니다. 알고 싶고 만나고 싶은 미래를 강렬하게 꿈꾸느라 정작 지나쳐버린 나의 눈, 코, 입. 눈으로 내 얼굴의 구석구석을 뜯어보고 코로 내가 서 있는 이 공간의 공기를 마시며 입으로는 조용히 자문해 봅니다.


"생생하게 꿈꾸어 가지고 싶은 나의 미래는 결국...... 무엇일까?"


그렇게 혼잣말을 내뱉고 마주친 거울 속 나의 얼굴은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 '현재의 행복'부터 살피라고. 멀고 아득한 곳을 보느라 지금 가진 것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생하게 꿈꾸면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은 바꿔말하면 지금껏 내가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은 눈에 보이듯 꿈꾸지 않은 까닭이라고 귀결지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나도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목표에 집중하느라 그 예민함에 머리털이 우수수 빠질 정도였죠.


망상 활성계의 설정대로라면 저는 벌써 제가 설정한 목표에 도달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왜, 또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왜 아직 그 꿈에 다다르지 못한 걸까요? 머리털이 빠지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며 목표 시각화에 더욱 매진해야 하는 걸까요?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다 저는 단순하고도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망상 활성계에 집중하느라(역시나 작은 것에 집중하느라) 뇌 작용원리의 기본 기제를 잊은 것이죠. 우리 두뇌는 즉각적이고 긍정적인 보상에 의해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 사냥을 해서 먹이를 구하던 수렵시대부터 스마트폰을 통해 즉각 정보를 흡수하는 오늘날까지 그것 하나만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현재를 긍정적 보상 삼아 미래를 꿈꾸어야 하는데 애초에 기본 설계가 잘못된 것이지요. 지금 저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 채 미래의 행복만 구하려고 했으니 망상 활성계 할아버지가 왔다해도 제 두뇌가 제대로 작동했을 리 만무합니다.


망상 활성계를 활용한 자기암시의 대가, 멜 로빈스는 말합니다. "당신의 두뇌 속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을 창조해 낸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기존의 프레임도 당신이 만들었으니 미래에 다가올 일도 당신이 만들 수 있습니다." 라고. 그러니 하루에 딱 5분만 목표의 시각화에 투자해보라고 열렬하게 권합니다.


멜 로빈스의 머리숱이 풍성한 걸 보니 그녀는 이미 제가 깨달은 바를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일찍 알려줄 것이지. 괜한 탓을 해 봅니다.


보물을 찾느라 지금 가진 보물을 못 보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자칫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오판하지 않기를 더욱 바랍니다.


당신이 당신만의 보물지도를 펼쳐두고 을 찾아가는 여정 하나하나가 행복으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순간 당신의 두뇌는 빠르게 움직일 것입니다. 행복감을 주원료 삼아 당신이 원하는 그곳으로 당신을 데려다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머리 한 곳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결론에 이르렀으니 이것조차 행복이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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