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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셀럽작가 Oct 27. 2020

투두리스트(To Do list) 조급증

 투두리스트에서 한 글자만 바꾸면

투두리스트 조급증 : 매일 할 일을 리스트에 넘치게 적어두고 빨리 완료하고 싶어 조급해하는 버릇이나 마음



어렵사리 미라클모닝 발작을 이겨내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스케줄러를 펼쳐든다. 오늘 날짜 아래 빈 칸이 눈에 들어온다. '잠들기 전 할 일을 미리 적어두는 게 내 체질엔 맞는데'라고 생각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날 할일을 적어보는 습관을 모닝 루틴에 포함시키라는 글을 읽었으니까. '난 참 읽은대로 실천을 잘 해' 하며 휴대폰을 집어들고 투두리스트 앱을 열어 오늘 할 일을 입력해 본다. 당장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되는 것들로 목록을 구성한다. 'OO프로젝트 기획안 마무리, '독서모임 이번주 도서 2챕터 읽기', '서재 왼편 책장 정리하기','- 하기, - 하기, - 하기'...... 맙소사. 이거 오늘 다 할 수 있긴 한거야?



어제 반드시 하겠다고 정해둔 일 목록 옆 네모칸이 휑하니 비어 있습니다. 분명 어제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어찌된 일일까요? 덕분에 오늘의 투두리스트는 어제의 그것과 쌍둥이처럼 닮아 있네요. 할 일 목록(to do list)을 적는 것을 아침 루틴에 포함시키라는 글을 읽은 후로 실천에 옮겨보았습니다. 리스트로 만들어 보니 확실히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언제까지 해야하는지가 눈에 들어와 초반에는 일의 효율이 높아졌습니다.


일의 효율이 다소 높아진 것은 좋습니다. 문제는 할 일 목록에 해야할 일들이 넘쳐난다는 것이었어요. 자기계발서에서 본 대로 하루의 할 일을 계획하고 행동에 옮깁니다. 계획 이외의 것이 들어올 틈이 없도록 빡빡하게 해야할 일들을 나열하고서 리스트를 손에서 놓지 않아요. 할 일을 쳐내면 쳐 낼수록 마음의 평화가 찾아와야 하는데 이건 그렇지가 않습니다. 해낸 일보다 할 일이 더 많이 남아있는 목록을 손에 쥐고 하루 해가 다 넘어가도록 마음만 분주합니다. 


다음 날은 계획한 일을 모두 해내고 말겠다며 종종걸음입니다. 이것도 해야하고 저것도 해야하고......조급증이 나지 않을 재간이 있나요. 손으로는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면서 머릿속은 '남아있는 일이 뭐더라?' 헤아리기 바쁩니다. 전형적인 비효율적 업무처리 방식이지만 리스트가 눈에 어른거리는 한 몸 따로 마음 따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계획에 없던 일이라도 생길라치면 조급증은 더욱 심해졌어요. 그 네모칸 안에 엑스표 치는 일이 뭐라고 그렇게 사람 마음을 쥐락펴락 하는지요. 책상 위에 놓인 손가락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달그락거리고 발가락은 움찔움찔 금방이라도 쥐가 내릴 것 같습니다. 애꿎은 리스트만 노려봅니다.





툭. 옆 자리 동료가 어깨를 칩니다. "잠시 나가 걸을래요? 너무 안에만 있으니까 답답해요."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내 손과 발의 상태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손가락 마디마디 '엄.청.바.쁨.' 이라고 새겨두었는데? 동료의 눈 앞에 리스트를 보여주고 '이 리스트를 보고도 산책하자는 이야기가 나옵니까?' 라고 하고싶지만 입은 마음과 달리 '그래요-' 라고 이미 대답한 상태입니다. 리스트는 잠시 내려두고 동료와 직장 건물 주변 산책에 나섭니다. 


건물 현관을 나선 후 왼쪽으로 크게 돌아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뒷편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 곳은 제가 좋아하는 담쟁이덩굴이 있어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곳입니다. 푸릇푸릇 이끼가 종종 보이는 돌계단을 지나 아카시아 나무가 드리워진 담벼락을 따라 천천히 걸어봅니다. 


천천히...동료를 옆에 두고 걷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잠시나마 제가 머릿속에서 할 일 목록을 지우고 오롯이 이 길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저 몇 걸음 걸었을 뿐인데 머릿속이 쾌청해졌다는 느낌이었어요. 손과 발이 차분해졌음을 알아차렸습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해 진 것이었어요. 


그 날 오후 저는 프로젝트 기획안을 평소보다 짧은 시간안에 마무리지었습니다. 지난 주 내내 엑스표를 긋지 못해 조바심을 내던 바로 그 일입니다. 기획안이 마무리되니 그에 딸려있던 기안문 작성하기, 보고하기, 자료 전송하기 등 굳건하게 리스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들도 자연스레 해결 되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홀가분함이었습니다. 


할 일 목록에 올려둔다고 일이 빨리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저는 왜 그리 목록을 늘리지 못해 안달이었을까요? 조급증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은 다름아닌 저였습니다. 하루 안에 마치지 못할 양의 일 목록을 만들어두고 머릿속을 그것으로 가득 채운 채 어느 하나에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어요. 그저 언제쯤 저 리스트 앞에 놓인 네모 빈 칸에 엑스표를 칠 수 있을 것인가. 그것만이 초미의 관심사였죠. 제 자신의 몸과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어요. 


혹시 지금 스케줄러나 할 일목록이 빈 틈없이 빼곡한가요? 스케줄러의 여백이 곧 내 몸과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해 보세요. 내일부터는 일과 일 사이에 공간을 두게 될 거에요. 그렇게 되면 정해진 일을 다 해내지 못할까봐 염려되신다고요? 그래도 일단 시도해보세요. 여백만큼 에너지가 충전되어 일의 효율이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에요. 할 일을 위한 할 일 목록이 아닌 당신을 위한 목록을 만드세요. 투두리스트가 아닌 투'유'리스트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기계발병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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