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수술 후 교육을 할 때마다 환자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갑상선 자극 호르몬과 갑상선 호르몬은 어느 순간엔 시소와 같다고. 되먹임 경로를 통해 우리 몸이 정교하게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데 딱히 좋은 표현이 떠오르진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소처럼 무조건 한쪽이 올라가면 한쪽이 내려가는 시스템도 아니다. 그럼에도 어르신들께 '요 부분에선 시소와 같아요'라고 말씀드리면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이 탑재되어 있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우리 몸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일정한 수준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프로그램이다. 하나가 올라가면 하나는 내려간다. 반대로 하나가 내려가면 다른 하나는 올라간다.
그런데 우리 몸에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가 올라가면 덩달아 다른 하나도 올라가거나 하나가 내려가면 같이 내려가는 시스템도 있다. 예를 들면 쾌락과 고통이 여기에 해당한다.
쾌락이 늘어나면 반대급부로 고통도 그만큼 커진다고 한다. 유튜브 쇼츠와 같은 단순 쾌락의 반복은 궁극적으로 고통을 수반한다. 반대로 고통이 크다면 그만큼 쾌락도 따라온다고 한다.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까지 달리라고 한다. 아주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항상성을 반드시 유지해야만 하는 우리 몸의 입장에선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
또 다른 예로는 귀여운 어린아이 또는 동물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폭력적인 충동에 대한 설명도 이에 해당한다.
Cute Aggression 또는 Playful aggresion, Gigil. 이는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다"와 같이 귀여운 것을 보았을 때 나타나는 역설적 충동을 말한다. 귀여운 것을 보았을 때 실제로 해치려는 의도 없이 꼬집고 싶고 깨물고 싶고 찌르고 싶어 하는 심리 상태이다.
이런 감정이 생기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너무 귀여운 감정이 치솟을 때 뇌가 이를 균형 있게 조절하려고 '공격성' 표현을 끌어내는 것이다. 즉, 감정적 과부하를 해소하려는 생리적 반응이라는 것이다. 귀여움에 압도되어 감정적으로 함몰되면 돌봄의 효용성이 떨어질 수 있고, 잘못된 양육은 종족 전체로 보았을 때 더 큰 손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의 경우 공격성의 충동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지만 어린아이들은 충동 제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반려 동물이나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을 해코지 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결국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다”는 감정도, 쾌락과 고통이 맞물려 흐르는 것처럼, 우리 몸이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마련한 정교한 파동의 한 조각이다. 마음이 한쪽으로 너무 기울면 시소처럼 다른 쪽이 기울어 균형을 맞추고, 파도처럼 반대의 물결이 밀려온다. 귀여움 속의 공격성도, 고통 속의 쾌락도, 모두 우리를 더 잘 돌보고 살아남게 하려는 생존의 언어다. 그렇게 우리는 흔들리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간다.